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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상처 입은 그들의 소망 ③ 천안함 구조 앞장선 해경 501함 고영재 함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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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3월 26일 밤, 해양경찰청 501경비함은 대청도와 소청도 사이 해역에서 경비 활동을 하던 중이었다. 그때 천안함이 공격을 받아 침몰해 간다는 무전 연락이 왔다. 501함은 사고 지점에 가장 빨리 닿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사고 통보를 받고 곧바로 22㎞를 달려갔다. 도착한 지 52분 만에 총 56명을 구조했다. 해경 대원들은 501함에 싣고 있던 2척의 고속단정에 탄 채 목숨을 걸고 구조에 나섰다. 다행히 고속단정은 작고 가벼워 침몰하는 천안함에 충격을 주지 않고 접근할 수 있었다. 영웅적인 일을 수행했지만 501함의 고영재 함장(55·경감·사진)은 그동안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당시 해군의 상황과 국가적인 분위기를 감안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23일, 인천 부두에 정박한 501함을 찾아 고 함장을 만났다.

 -사건이 터진 지 9개월이 됐습니다.

 “당시 구조된 후 ‘나만 살아왔다’고 울던 장병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지금도 그들에게 위로가 필요할 것입니다.”

 -바다에 일이 많은 한 해였습니다.

 “천안함·연평도…. 쉴 새 없이 지냈습니다. (천안함 사건을) 잊을 만하면 또 생각나고…. 저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겁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배 타는 사람 맘은 다 똑같아요.”

 - 그날(천안함 폭침 3월 26일) 밤 기억이 잊혀지지 않겠습니다.

 “90도로 누운 배 위에 50여 명이 가까스로 서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습니다. 해군 함정들이 근처에 있었는데 구조를 못 하고 있었어요. 그걸 큰 배로 건드렸으면 사람들 넘어지고 빠지고 해서 다 죽었을 겁니다. 해상 구조는 육지에서 하는 것만큼 쉽지 않아요.”

 지난 6월 해군은 천안함 인양과 구조활동에 공적이 있는 간부 80여 명에 대해 대규모 포상을 추진했다. 고 함장은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9월에야 공적을 인정받아 옥조근정훈장을 받았다. 해경 내부에선 “뭐가 뒤바뀐 거 아니냐”는 불만의 소리도 나왔다. 이에 대해 고 함장은 “유가족들을 생각하면, 우리가 주목 받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들. 고 함장은 그들의 아픔을 잘 알고 있다. 지난해 2월, 그는 29세 막내딸을 사고로 잃었다. 대학원에 다니던 딸은 학교 간다고 집을 나섰다가 계단에서 미끄러졌다. 단순한 사고였지만 사랑하는 딸과 영이별을 했다. 그는 1979년 순경으로 입문해 31년 동안 해경에서 근무했다. 해경 생활 중 20년은 바다에서 보냈다. 당연히 딸과 함께 한 시간도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딸은 훌쩍 컸고 그가 일 때문에 바다를 누비는 사이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그는 올해 딸의 1주기를 맞았을 때 딸이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올 3월, 그는 차가운 밤바다에서 56명의 아들들을 건져냈다. 주변에서는 “젊은 목숨들을 그렇게 구하다니. 딸이 도와준 거야”라고 했다.

 “자식을 다 키워서 그런 일을 당했을 때의 그 심정을 누구보다 제가 잘 압니다. 부디 아픔을 추스르고 용기를 가지길 바랍니다. 다 잊을 순 없을 겁니다. 하지만 악몽에서 깨어나기 바랍니다.”

 501함은 인천 앞바다를 지키기 위해 24일 다시 출항했다. 고 함장은 올해도 바다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인천=심서현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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