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안위 걸린 ‘천안함·연평도 유언비어’ 재판 올스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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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이 먼저 북측 바다에 포격해 북한이 대포를 쐈다. 전쟁용 폭탄이 아니라 화염탄을 쏴 피해를 극소화했으므로 남한 주민들은 북한에 고마워해야 한다.”

 북한의 연평도 공격 이후 신모씨가 인터넷에 띄운 글이다. 신씨는 천안함 사태 때도 우리 정부의 발표를 비방하는 내용의 글을 올려 재판에 넘겨진 사람이다. 그는 이번 연평도 공격 사건에서 다시 허위 사실을 유포해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이 이를 기각하자 검찰 시민위원회는 재청구하라는 의견을 냈다. 일반 시민도 사회에 대한 해악이 용납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신씨는 28일 헌재 결정에 따라 더 이상 법정에 서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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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씨보다 한 술 더 떠 “연평도 폭격은 자작극이다” “천안함은 미군이 침몰시킨 것이다”라고 주장한 사람이 있다 해도 이를 처벌할 수 없다. 안보 문제뿐이 아니다. 미네르바처럼 경제 관련 허위 정보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대도 법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 예를 들어 “핫뉴스! 2011년 1월 1일 정부가 화폐 개혁에 나선다고 함”이라는 글을 한 경제 논객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다고 해도 처벌 근거가 없다. 과거 미네르바가 그랬던 것처럼 온·오프라인으로 삽시간에 번지면서 많은 사람을 혼란에 빠뜨리겠지만 이를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진실의 시장을 교란하는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헌재가 효력을 중지시킨 전기통신법 47조1항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위헌 입장을 낸 재판관들(7명)은 공통적으로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라는 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헌법상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건이 ‘공익’이라는 지나치게 불명확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돼 있다고 판단했다. ‘공익’이라는 단어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면서 인권을 임의로 제한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헌재 재판부가 밝힌 것처럼 공익의 범위는 매우 광범위하다. 이 때문에 이를 모두 법률에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사회 통념상 개념으로 자리 잡은 공익을 저해하는지 여부는 검찰이나 법원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가장 먼저 보장하기 시작한 유럽연합(EU) 역시 표현의 자유는 적극 인정하도록 하면서도 제한할 수 있는 근거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EU 회원국 정부가 공동으로 제정한 유럽인권협약은 ‘표현의 자유’ 장에서 “민주주의 체제 수호에 필요한 국가안보나 공공의 안녕 등을 위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공공의 안녕은 전기통신법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공익’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공통의 헌법이 없는 EU에서 인권협약은 각 회원국에 헌법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이에 따라 유럽 각국은 인권협약에 나타난 공익에 대한 정신을 받아들이면서 구체적인 사례를 법에 열거하는 대신 이를 사법당국의 재량에 맡기고 있다.

 검찰도 이 같은 점에서 헌재의 결정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대검 관계자는 “사회를 혼란시킬 목적으로 유언비어를 인터넷에 올린다 해도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아무런 제재를 할 수 없게 됐다”며 “이 조항을 없애는 대신 대체 입법이 신속히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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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유언비어 처벌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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