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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소탄 들고 할리우드로 … 심형래, 이번엔 마피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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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심형래 감독의 할리우드를 향한 도전은 계속된다. 영구가 심 감독의 신작 ‘라스트 갓파더’에서 50년대 뉴욕 마피아 보스의 아들로 등장한다. [영구아트 제공]


이 남자의 ‘아메리칸 드림’은 현재진행형이다. 심형래(52) 감독을 말한다. 그의 두 번째 글로벌 프로젝트 ‘라스트 갓파더’가 29일 개봉한다. 심 감독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영구’ 캐릭터를 내세운 코미디다. 2007년 국내에서 800만 관객을 끌어들인 ‘디워’에 이어 또다시 미국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야심이 만만치 않다. 이번 프로젝트가 코미디가 된 건 웃음은 만국공용어라는 평소의 소신이 반영된 것이다. ‘디워’는 미국 개봉 당시 한국영화 사상 최다인 2267개 스크린에서 상영됐지만,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심 감독은 이번에 ‘디워’의 컴퓨터 그래픽 대신 폭소를 무기로 들고 나왔다. 영구의 슬랩스틱(우스꽝스럽고 과장된 몸짓) 장면에선 웃음이 나온다. 조직원들과 야구방망이와 역기 등으로 서로 맞고 때리는 소동은 바보스럽지만 즐겁다. 바람에 부는 모자를 쫓아가는 영구, 길거리 쓰레기통에 걸려 넘어지면서 예의 ‘띠리리리리리’를 하는 영구, 수박과 스파게티를 식신(食神) 마냥 게걸스럽게 먹는 영구, ‘잉글리시’와 ‘콩글리시’의 중간 정도 되는 영어로 ‘옥∼케이(OK)’를 연발하는 영구…. 영구의 무의미하고 반복적인 행동은 보는 이를 무장해제시킨다.

 토종 캐릭터 영구에 대한 미국 배우들의 리액션을 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다. 미국 관객에게 익숙한 ‘화장실 유머’도 빠지지 않는다. 방귀와 발냄새, 똥침 등이 고루 동원된다. 고전의 인용과 화장실 유머, 그리고 토종 캐릭터의 결합이 미국 관객들에게 얼마나 호소력을 지닐지 궁금하다.

 하지만 웃음의 폭발력을 놓고 봤을 때는 많이 아쉽다. 고(故) 이주일 식으로 말하자면 뭔가 보여주겠다고 해놓고 다 안 보여준 것 같다. 특히 영구를 아는 30~40대 관객에겐 익숙한 코미디의 되풀이에 그친 느낌이다. 영구를 모르는 젊은 관객에겐 더할 듯싶다. 스토리텔링의 뻔하고 허술함도 감출 수 없는 결점이다.

‘디워’보다 만듦새가 나아지긴 했지만, ‘라스트 갓파더’의 배우들은 대사를 교과서처럼 읽고 앵무새마냥 내뱉는다.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가 암흑가 조직을 휘저어놓은 후 보스의 전 재산을 고아원에 기부한다는 결말은 허탈하기까지 하다.

심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인 영구의 옛 모습. [중앙포토]

 ‘라스트 갓파더’는 한국과 미국 모두를 겨냥한 ‘추억상품’이다. 1980년대 ‘유머1번지’로 큰 인기를 누렸던 바보 캐릭터 영구가 50년대 뉴욕 마피아 대부의 후계자가 된다는 설정부터 그렇다. 알 파치노 주연 3부작 ‘대부’는 72년 1편이 만들어진 후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할리우드 마피아영화의 고전이다. 라이벌 마피아 우두머리의 딸 낸시(조슬린 도나휴)와 영구가 거리에서 춤추는 대목에선 뮤지컬 영화의 대명사로 꼽히는 ‘싱잉 인 더 레인’을 살짝 빌려왔다. 여기에 심 감독은 영국산 머저리 주인공 ‘미스터빈’을 연상케 하는 불세출의 바보 캐릭터 영구를 얹었다. 보스 돈 카리니(하비 케이틀)의 입에서 나오는 “용쿠(영구)” 발음은 은근히 중독성 있다.

 심 감독은 여전히 할리우드 습격을 꿈꾸고 있다. “‘디워’로 미국 진출을 시도하지 않았다면 ‘라스트 갓파더’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겠는가”라고 말한다. 일리 있는 얘기다. ‘라스트 갓파더’는 제작 전 과정이 미국에서 이뤄졌다. 심 감독의 원안을 ‘토이 스토리’의 조엘 코엔이 각색했고, ‘저수지의 개들’ ‘펄프 픽션’의 연기파 배우 하비 케이틀 등 미국 배우가 다수 출연했다. 촬영·조명 등 주요 스태프도 할리우드 인력이다. 충무로 그 누구도 하기 힘든 시도이고 뚝심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미국 개봉 일정은 미정이다.

 하지만 심 감독은 영화를 작품보다 일종의 ‘현상’으로 이슈화한 전력이 있다. “세계에 도전하는 한국영화 잘 봐달라”는 ‘디워’ 때의 호소는 ‘애국심 마케팅’으로 번졌다. 충무로에서 비주류 취급을 받는 그에게 동정 여론도 높았다. ‘심빠’ ‘디빠’로 불리는 열혈 네티즌은 평론가들을 “안목 없고 편협하다”며 맹공격했다. ‘라스트 갓파더’를 띄우려는 그의 ‘에너자이저’급 홍보를 보자면 역시 ‘디워’와 비슷한 분위기로 몰고 가는 분위기다. 최근 한 달 방송 출연과 신문·잡지 인터뷰 횟수가 80회에 육박한다. 다른 배우들이 통상적으로 하는 것의 두 배가 훨씬 넘는 양을 소화하며 그는 “세계무대에 한국영화가 제대로 설 수 있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결론-. ‘주류’ 충무로의 회의적인 시각에도 끊임없이 미국 시장을 두드리는 심 감독의 결기는 대단하다. 하지만 ‘감독 심형래’ 타이틀과 관련해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평가도 병행돼야 한다. 시장에 나오는 모든 상업영화는 그런 절차를 거치기 때문이다. 코미디 영화의 완성도를 논하면 “너그럽지 못하다”고 맞받아치는 시각도 곤란하다. ‘웰메이드’라는 수식어가 코미디 앞에 붙지 말란 법은 없다. 심 감독이 갈고 닦아야 할 숙제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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