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나라당 지도부의 혼선과 위신 추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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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안보 비상시국일수록 집권당 지도부는 국정을 주도할 수 있는 리더십과 국민의 신뢰를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런 기대에 크게 미달하고 있다. 이렇게 엉성하고 분열적인 지도부가 과연 임기(2012년 7월)를 채워야 하는 건지 많은 국민의 걱정이 깊다.

 우선 안상수 대표의 권위가 너무 추락하고 있다. 그는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군대를 가지 않았다. 병역 면제가 논란이 됐다면 그는 안보 정세에서는 더욱 몸가짐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런데 그는 연평도를 방문해 보온병을 들고 북한이 쏜 포탄의 탄피라며 사진을 찍었다. 그는 그제 여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만연된 성형 풍조를 지적하면서 “룸(살롱)에서는 자연산을 많이 찾는다더라”는 발언을 했다. 성형하지 않은 여자를 ‘자연산’이라는 먹을거리로 표현한 것이다. 가벼운 환담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중대한 ‘실언(失言) 파동’을 겪은 집권당 대표로서는 매우 부주의한 행동이다. 이렇게 부주의한 여당 지도자가 어떻게 군에 경계심을 촉구하나.

 지도부 전체로도 문제가 적지 않다. 중요 문제에 대해선 내부적인 논의를 거친 후 의견이 정돈된 상태로 나와야 하는데 최고위원이나 중진의 사견(私見)이 불쑥 언론에 공개된다. 그러니 국민의 눈에는 당이 분열되고 노선이 왔다갔다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것이다. 그제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는 정두언·홍사덕·남경필 의원이 대북정책의 재검토를 주장했다. 정 의원은 “강경 일변도의 대북·외교·안보라인의 재검토”까지 요구했다.

 지도부 개인들은 대북정책을 포함해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자유로운 의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안보·대북처럼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엔 의견 표출의 시기와 방법이 신중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위중한 시기에는 대통령·당·정부·군이 일체감이 있고 정돈된 메시지를 북한과 세계에 보내는 게 중요하다. 일부 인사가 다른 견해를 표출하고 싶으면 먼저 내부적인 토론을 거쳐야 한다. 어제 나경원·서병수 최고위원은 정제되지 않은 의견이 나갈 경우 북한과 세계가 한국의 정책을 오해할 수 있다는 취지로 문제를 제기했다. 적절한 지적이다.

 남경필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은 예산안 파동 이후 “여야 합의 없이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안을 상정치 않겠다”고 했다. 이것도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야당이 끝내 반대하면 집권당의 책임을 포기하겠다는 것인가. 홍준표 최고위원은 당의 예산안 강행 처리에 대해 “1996년 12월의 노동법 날치기가 생각났는데 그것이 YS 정권 몰락의 신호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노동법 정비는 재계를 포함해 사회의 많은 구성원이 필요성을 인정한 것이다. 홍 의원 자신도 찬성표를 던졌다.

 지도부의 위신 추락, 혼선, 개인적인 언론 플레이, 분열, 말 바꾸기가 집권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상처를 주고 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봉숭아학당”이라는 세간의 냉소를 뼈아프게 받아들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