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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1000마리 살처분 … 선 보상금은 20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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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강원도 평창과 화천 농가의 구제역 의심 신고가 양성으로 판정돼 비상이 걸렸다. 평창군 공무원들이 22일 구제역 발생 농가 부근에서 방역활동을 하고 있다. [평창=연합뉴스]

“언제까지 당국이 소를 죽여 파묻고 보상금만 지급하고 있을 건가. 해도 너무한다. 하루라도 빨리 소를 다시 키울 수 있게 해줘야 할 것 아닌가….”

 경북 안동을 휩쓴 구제역으로 자신이 키우던 한우를 모두 살처분 당하고 텅 빈 축사를 지키는 이모(53·안동시 녹전면)씨의 하소연이다. 그는 “구제역으로 인한 피해가 너무 심하다”며 자신의 실명 공개를 거부했다.

 20여 년간 한우를 사육해온 이씨는 이번에 자그마치 한우 1000여 마리를 땅에 묻었다. 그는 초지와 축사 3개 동 등 3만3000여㎡(1만 평) 규모의 농장을 둔 한우 대농이다. 농장에는 새끼를 밴 암소 30여 마리와 한 마리에 시세 750만∼800만원 하는 큰 소 500마리가 넘었다.

 이씨 농장은 구제역이 발생하거나 발생지점에서 반경 500m 안에 들지 않았지만 한우는 예방적 살처분을 당했다. 그가 지난달 27일 경매장에서 사들인 송아지 한 마리가 문제였다. 송아지의 어미 소가 구제역 감염으로 추정된 게 살처분의 근거였다.

 이씨는 살처분에 완강히 반대했다. 자신은 안동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뒤 직원 세 사람과 같이 매일 방역한 만큼 양성으로 판정나지 않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며 버틴 것이다. “공무원들은 계속 반대하면 ‘공무집행 방해’가 된다고 협박한 뒤 살처분에 들어갔습니다.”

 살처분은 10일부터 사흘간 계속됐다. 이씨는 그 광경을 차마 볼 수 없어 살처분 대상 소의 평가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정부는 살처분 전에 대상 가축 상태를 평가해 보상액을 정한다.

 안동시는 살처분을 마친 뒤 절차에 따라 경북도에 보상금을 신청했다. 정부는 살처분 농가에 시세대로 전액을 보상하지만 1차는 해당 금액의 50%를 지급한다. 한우의 경우 7개월 미만은 한 마리에 300만원, 그 이상은 한 마리에 500만원으로 잡아 절반을 준다. 나머지 절반은 살처분한 소의 성별이나 무게, 거세 여부 등을 따져 정산한 뒤 지급한다. 경북도는 17일 이씨에게 19억6600만원을 지급했다. 전체 1000여 마리 살처분 소 가운데 이씨 명의로 된 787마리의 선지급금이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안동시 보상 담당자는 “아직 살처분이 마무리되지 않아 나머지 보상금 정산은 아직 시작하지 못한 단계”라고 말했다.

 정부는 여기다 농가가 신청할 경우 생계안정자금 최대 1400만원을 지원한다. 또 사료 등 농장의 오염물건도 평가를 거쳐 폐기한 뒤 최대 2000만원까지 보상한다.

 살처분 농가는 이런 보상 방식에 만족하고 있을까. 손실 여부를 묻는 질문에 이씨는 “소를 제발 돈으로만 보지 말라”고 강조했다.

 보상에서 간과된 부분은 여러 가지였다. 이씨는 “빚 없는 한우 농가는 없다”며 자신도 차입금이 10억원이 넘는다고 했다. 이자는 감면해 준다니 믿겠다고 했다. 문제는 넓이만 3만3000㎡가 넘고 시설비 등을 합쳐 70억∼80억원이 투자된 농장을 마냥 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소를 키워 돈 벌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안동시도 경북도도 누구 하나 언제쯤 사육을 재개할 수 있다는 말이 없어요. 너무 답답합니다.”

 거기다 직원 세 사람을 계속 고용해 들어가는 인건비도 1000만원이 넘는다. “소가 없어졌다고 나 몰라라 하고 내보낼 수도 없거니와 다시 사육하려면 이들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사료도 확보해둔 게 1억원어치에 이른다. 그는 폐기만이 능사가 아니라며 “보상을 받아도 이런 좋은 사료를 구할 수가 없다”며 답답해했다. 이씨는 “억울하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예방적 살처분을 마친 뒤 나온 판정 결과는 ‘음성’이었다. 역학관계 하나로 한우 1000여 마리를 살처분하는 게 과연 옳은 방법인지 지금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안동=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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