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중국 어선 침몰 사고, 공동조사로 시비 가려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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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주장이 엇갈릴 때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객관적 사실이다. 서로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근거로 시비를 가리면 되는 것이다. 어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 규명을 위해서는 훼손되지 않은 실체적 증거부터 확보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해에서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과 한국 해경 경비함의 충돌 사고를 둘러싼 책임 논란도 객관적 사실을 기준으로 시비를 가리면 그만이다. 공동조사를 통해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그에 따라 책임 소재를 따지면 될 일이지 얼굴 붉히며 싸울 일이 아닌 것이다.

 이치가 이러함에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한국 측에 책임을 전가하고, 관련자 처벌과 보상을 요구하고 나선 것은 상식을 벗어난 과잉대응이다. 자칫 ‘적반하장(賊反荷杖)’으로 비칠 수 있다. 이미 한국 정부는 중국 측에 객관적 사실을 입증할 동영상과 레이더 기록 등 관련 자료를 다 보여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이를 무시하고 자신들 입장만 내세운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조업 허가를 받지 않은 중국 어선이 한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들어와 어로 작업을 하다 단속을 받게 되자 공동어로수역인 잠정조치수역으로 달아난 것이 문제의 발단이라고 해경은 설명하고 있다. 추격에 나선 경비함과 중국 어선의 충돌·침몰 사고로 2명의 사망·실종자와 8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지점은 우리의 배타적 관할권이 미치지 않는 잠정조치수역이지만 처음 문제가 불거진 곳은 우리 측 EEZ였다는 것이다. 2001년 체결된 한·중 어업협정에 따르면 이 경우 잠정조치수역까지 추격해 단속하는 것은 우리의 권한이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 점을 쏙 빼놓고 일방적 주장만 했다. 게다가 침몰한 중국 어선이 우리 경비함과 고의로 충돌했고, 우리 해경 4명이 중국 선원들이 휘두른 둔기에 맞아 부상을 입은 사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객관적 사실을 토대로 시비를 가릴 법리(法理)의 문제이지 외교 문제가 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양국 관련자들이 참여하는 합동조사를 통해 신속하게 책임 소재를 가리고, 그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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