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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북한 감싸고 돌았지만 중국 뺀 이사국 모두 “북한 규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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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일(현지시간) 열린 유엔 안보리 회의가 성명 채택에 실패한 채 아무 성과 없이 종료됐다. 유엔 주재 수전 라이스 미국 대사(오른쪽)와 비탈리 추르킨 러시아 대사가 회의 후 각각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욕 로이터=연합뉴스]


19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천안함 사건을 다뤘던 지난 6월과는 처음부터 양상이 달랐다. 6월엔 한국 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안보리에 올렸다. 북한은 방어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러시아가 안보리를 소집했다. 이사국에 회람한 러시아의 의장 성명 초안도 북한 입장을 반영했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에 대한 규탄과 재발 방지 촉구는 쏙 뺐다. 대신 한국군의 임박한 사격훈련과 이에 대한 북한의 맞대응만 문제 삼았다. 남북의 입장도 뒤바뀌었다.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에선 신선호 대사와 박덕훈 차석대사를 비롯한 대표단이 총출동했다. 북한은 안보리를 내세워 한국군의 사격훈련을 막기 위해 공세를 폈다. 그러면서도 북한 대표단은 말을 극도로 아꼈다.

 이와 달리 한국대표부는 오전까지 실무진만 회의장에 보냈다. 처음부터 안보리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는 얘기다. 지난달 북한의 연평도 도발 이후 물밑 접촉을 통해 이미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양 진영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자 러시아와 영국이 수정안을 내기도 했다. 영국이 ‘11월 23일 한국에 대한 북한의 공격을 규탄한다’는 문구가 들어간 초안을 회람해 서방국가의 지지를 얻어냈다. 그러자 러시아는 영국 초안에서 ‘북한’과 ‘연평도’라는 단어만 뺀 수정안을 다시 제시했다.

 극적 타협이 이루어지는 듯했던 협상은 막판 중국의 비토로 깨졌다. 중국은 ‘북한’ ‘연평도’는 물론 ‘규탄’이란 단어가 들어간 성명도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버텼다. 결국 순회 안보리 의장인 수전 라이스 미국 대사는 “20일 코스타리카 문제를 논의하는 안보리에서 다시 한번 논의하자”며 회의를 마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안보리가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할 가능성은 사라졌다. 한국군이 사격 훈련을 강행한 이상 러시아의 문제 제기가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비록 의도한 성명을 이끌어내진 못했지만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에 밀렸던 입지를 상당 부분 회복했다. 비탈리 추르킨 러시아 대사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역할론을 제기해 이사국 사이에서 호응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중국과 북한은 외교적으로 고립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중국을 뺀 거의 모든 안보리 이사국이 북한의 연평도 도발을 규탄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를 확인한 한국으로선 기대하지 않은 소득을 올린 셈이 됐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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