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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과 지속가능한 발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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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박성현
한국연구재단·기초연구본부장

모든 국민이 과학기술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정부 R&D 예산을 살펴보면 2005년에 7조8000억원에서 2009년도 12조3000억원, 2010년에 13조7000억원으로 지난 5년간 매년 12% 정도의 투자가 확대됐다. 매우 고무적인 정부의 노력이다. 그러나 정부 R&D 예산 중에서 기초연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도 27.6%로 아직 낮은 수준이다. 기초연구 중에서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의 정부 R&D 예산 중 순수기초과학 분야(수학, 물리, 화학, 천문, 생명과학, 지구과학) 투자는 11.2% 정도다. 이것도 생명과학을 제외하면 6.3%에 불과하다. 미국국립과학재단(NSF)의 순수기초과학 투자비중은 46.8%이고 생명과학을 제외하면 34.0%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기초원천 과학기술에 대한 정부의 투자는 주로 한국연구재단을 통해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시행하고 있다. 올해 한국연구재단의 연구비는 2조9000억원이다. 이 중 개인기초연구비는 6500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2월 8일에 국회를 통과한 내년도 예산을 보면 개인기초 연구비는 7500억원으로 늘기는 했으나, 2012년 국정 목표인 1조5000억원을 달성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개인기초연구비가 향후 획기적으로 증액돼야 우리나라 3만2000여 명의 과학기술 분야 연구자들을 위한 풀뿌리 기초연구비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에 미국은 NSF 예산 4조5000억원에 한시적으로 3조원을 추가해 7조5000억원을 주로 기초과학 분야에 지원했다. 올해 NSF 예산은 7조원가량으로 증액됐다. 이는 미국이 경기침체에 따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장비 및 시설 등 기초연구 인프라 구축, 대학 및 연구소에 연구과제 지원금 확대를 실시한 이례적인 조치다. 이러한 과감한 조치는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지원확대를 통해 창출된 기술발전을 매개로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이루겠다는 미국의 과기투자 비전을 반영한 것이다.

 기초과학 역량으로 따질 때 우리나라는 아직 중진국 수준이다. 기초과학 역량의 중요 척도인 노벨과학상(물리, 화학, 의학)을 보면 역대 수상자 551명 중에서 미국은 238명, 일본은 14명으로 한 명도 없는 우리나라와 비교된다. 과학인용지수(SCI)를 보면 고피인용 연구자 7003명 중에서 한국인은 4명뿐으로 미국의 4140명, 일본의 265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우리나라는 큰 규모의 기초과학연구원이 없다. 미국의 로런스 버클리 국립연구소, 일본의 이화학연구소, 프랑스의 국립과학연구원 등이 수천 명의 연구원으로 구성된 것을 보면 부러울 따름이다. 기초과학연구는 수천 명의 연구원들이 모여 치열한 토론을 통한 창의적인 연구 환경이 조성될 때 연구의 상승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기초과학연구원의 조속한 설립을 촉구하고 싶다.

 장기적으로 볼 때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는 가장 확실한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위한 길이다. 우리 후손이 좀 더 풍요롭게 살고, 미래에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국가로 우뚝 서기 위해서 정부가 기초연구에 과감히 투자해 줄 것을 당부한다.

박성현 한국연구재단·기초연구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