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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단결론만으론 여론 지지 힘들어' - 이정무의원

중앙일보

입력

96년에 치러진 15대 총선에서 자민련은 대구의 13개 선거구 가운데 8개 지역을 석권했다. 당시의 여당인 신한국당은 단 2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무소속 당선 3곳)
. 당시의 선거 결과는 대구 지역의 반YS 정서가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해석됐다. YS가 총재로 있는 당시의 여당에 대한 반감이 그 당에서 쫓겨난 JP가 만든 자민련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97년 대선을 계기로 대구의 정치 정서는 큰 변화를 겪는다. 야당 시절 그처럼 압도적 지지를 얻었던 자민련에 대한 지지는 한자릿수로 떨어졌다. 대신 신한국당의 후신인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는 30%대 이상을 꾸준히 유지해 오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격세지감’에 TK지역 자민련 의원들의 고민이 없을 리 만무다. 건설교통부 장관을 맡아 DJ정부의 1기 내각에도 참여했던 이정무(대구 남구)
의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장관직에서 물러난 후 많은 것을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다”는 이의원을 9월9일 오전 서울 역삼동 개인사무실에서 만났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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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으로 변신한 이후 자민련이 낮은 지지율로 고전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국민들은 경제개발 시대의 주역이 모여 있는 자민련이, 정권교체 이후의 충격적 변화나 개혁에 맞서 보수층의 이익을 대변해 주기를 기대했습니다. 자민련이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국민이 기대했던 수준에 이르지 못했던 것이 낮은 지지율의 가장 직접적인 배경이라고 봅니다. 여기에다 내각제 파동을 계기로 당이 국민에게 준 실망감도 컸습니다. 그러한 지역의 분위기는 저 자신이 아주 냉엄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TK지역에서 현정권에 대한 냉소적 시각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이유는 뭡니까.

“가장 큰 문제는 인사정책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정부의 각종 요직이 짧은 기간 안에 호남 인사들로 채워지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불가피했다고 하더라도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제대로 조절되지 않는 과정에서 대구·경북 지역 주민들에게 상당히 부정적인 인식이 심어진 것입니다.”

─지금의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지면 내년 총선도 낙관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자민련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지금의 구도나 분위기가 총선 때까지 이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의원 개개인이 자신이 해온 역할을 놓고 유권자들과 대화하고 설득해 나가야죠. 당 차원에서 반성할 것은 반성하면서 심기일전해 새로운 정책대안을 제시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면 분위기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믿습니다.”

─총선이 목전에 다가오고 있는데 정책대안 제시를 통한 이미지 변화 시도가 효과가 있겠습니까.

“획기적인 대안을 내놓지는 않더라도 자민련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 문제를 놓고 당 안팎의 여러 사람들과 논의도 하고 있습니다. 공동여당이니 무조건 국민회의를 따라가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국민회의가 잘못하면 자민련이 문제제기하고, 새로운 대안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자민련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 자민련의 일부 의원들은 국민회의와의 합당 필요성까지 거론하고 있는데요.

“합당은 어려울 것입니다. 두 당은 생성 기반과 그동안 해온 역할이 다릅니다. 자민련에는 국정 경험이 있고 보수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반면에 국민회의에는 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개혁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이러한 기본 컬러상의 차로 인해 두 당 간에는 정책적인 갈등도 없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고 사람 위주로 평면적인 합당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봐야 합니다.”

─합당 되면 당을 나갈 의원들이 많습니까.

“합당이 명분과 실리를 가지려면 양측이 50 대 50의 지분을 갖고 새로운 당으로 태어나는 모양새가 돼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거론하는 합당은 우월적 지위를 가진 국민회의에 자민련이 흡수되는 형식 아닙니까. 그러한 합당이라면 현역 의원이나 원외 지구당위원장들 상당수가 동참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때 한국 정치의 최대 주주 역할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점에서 지역의 유권자들은 TK 정치인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다며 아쉬움을 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얼마 전에는 박태준 자민련 총재가 여권 TK의원들간의 모임을 마련한 적도 있습니다만 현역 정치인들이 당파를 초월해 다시 세를 모을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까.

“말씀하신 그러한 정서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치는 현실입니다. 상황과 명분이 조화를 이루어 자연스럽게 진행될 때 어떤 영향력과 위상을 갖게 됩니다. 의식적으로 어떤 상황을 유도하려는 시도는 자연스럽지도 않고 여론의 지지도 얻기 힘듭니다. 그러한 움직임은 또다른 지역주의로 이어질 우려도 있습니다.”

─TK의원들간의 모임에서 그러한 지역의 분위기나 정서도 논의하십니까.

“정치권의 돌아가는 사정이나 총선을 앞둔 지역의 분위기 등을 격의없이 논의했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만나 많은 얘기를 하게 될 것입니다.”

─자민련 소속 TK의원들이 내년 총선 이전에 탈당할 것이라는 분석도 합니다. 그 가운데는 이의원의 이름도 들어있던데요.

“저는 선거에서 당선되기 위해 당을 옮겨다닐 정도로 소신이 없거나 가벼운 사람이 절대 아닙니다. 정치인이 당을 선택할 때는 정강정책이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합치한다거나 거꾸로 도저히 합치할 여지가 없다는 등의 객관적이고도 분명한 명분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유권자의 지지를 얻을 수 없지요.”

─대구의 경우 내년 총선 판세가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십니까.

“아무래도 야당이 주도하는 분위기가 되지 않겠습니까. 여권으로서는 어떤 변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하지 않으면 고전할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신당 등 여러 시도를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 시도의 하나로 검토되는 선거구제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이십니까.

“국민은 사회 모든 분야가 구조조정으로 고통받는 데 정치권만 개혁을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서를 수용해서라도 정치개혁은 이뤄져야 합니다. 따라서 선거구제도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진정한 정치 발전을 실현하기 위한 차원에서 결정돼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지금의 정치권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의 원인이 되는 소선거구제는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종주 월간중앙 기자
월간중앙(http://win.joongang.co.kr) 제 287호 1999.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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