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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봉 기자의 도심 트레킹 [17] 서울 낙산공원, 코엑스~봉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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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첫머리 키워드가 ‘계획’이라면, 끝 무렵의 키워드는 ‘정리’다. 한 해가 저물 무렵이면 나도 모르게 한 해 소망했던 일, 계획했던 것들을 뒤돌아보게 된다. 끝이 아름다워야 출발도 매끄럽다. 생각을 정리하고플 땐, 북적이는 도심보다 산사나 산등성이를 걸어야 한다. 강북과 강남, 한 군데씩 고즈넉한 산책로를 소개한다. 북적이는 쇼핑가와도 가까운 곳들이다. 망년회·송년회로 빡빡해진 스케줄을 비집고 한번쯤은 달빛을 받으며 가로등 사이를 조용히 걸어보자. 도심의 빛도 부드러워지는 한적한 곳에서는 쌀쌀한 바람 소리도 때로는 위로가 될 테니.

낙산공원

한 해가 저물 무렵 조명이 켜진 낙산의 성곽길을 따라, 마을의 부드러운 불빛을 보며 걷다보면 다사다난했던 올해가 정리되는 기분이 든다. [김상선 기자]

한 해의 끝, 해 저문 낙산공원을 걷는다. 사실 낙산(駱山)은 산의 형세가 낙타의 혹과 비슷하다고 해 붙은 이름이지만 그 울림은 한 해의 끝과 딱 맞아떨어진다. 낙산은 옛 서울 도성을 품은 내사 산 중 하나다.

 북쪽 북악산, 남쪽 남산, 서쪽 인왕산에 비해 동쪽 낙산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다른 산에 비해 화려하지는 않으나 꾸밈 없는 순수한 멋이 있다. 조명 밝힌 성곽 둘레를 걸으며 보이는 도심의 야경과 성북구의 올망졸망한 마을의 불빛이 스케치 같은 풍경을 이룬다.

  전체적으로 코스가 쉽긴 하지만 인적이 드문 곳도 있으므로 혼자 걷기에는 약간 무서울 수도 있다.

 지하철 1·4호선 동대문역 7번 출구에서 시작한다. 1번 출구에서 시작하는 것이 낙산공원으로 가는 길과 가장 가깝기는 하지만, 이곳까지 와서 흥인지문을 건너뛰어 지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7번 출구로 나오자 마자 바로 앞에 흥인지문이 서 있다. 조명 빛을 아래서부터 받고 서 있는 문은 밤에 볼 때 더 위엄이 느껴진다.

 인도로 30m 걸은 뒤 횡단보도를 건너 왼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대문역 1번 출구를 지난다. 성곽이 보이는 동대문교회 오른쪽 오르막길로 걸어 올라간다. 성곽 길의 시작이다. 왼쪽으로 성곽, 오른쪽으로 사람 사는 동네가 있다. 가로등 불빛만 밝히는 한적한 길이 이어진다. 이 길의 끝에 낙산공원이 있다.

 ‘낙산길’이라는 표지판이 있는 마을버스 다니는 도로와 마주친다. 길이 두 갈래인데, 두 길 모두 야경이 아름답다. 왼쪽으로 차도 따라 올라가면 서울 도심의 풍경이 보인다. 이 길을 따라 주욱 걸으면 혜화역으로 연결된다. 오른쪽 ‘낙산공원’이라는 간판이 보이는 쪽으로 걸으면 오른쪽으로 성북구 마을이 보인다. 이 길은 한성대입구역으로 통한다. 두 길은 성곽 아래에 있는 좁은 통로로 이어져 있다. 먼저 도심의 풍경을 보고 오른쪽 통로를 통해 나무계단을 걸어 내려온다. 다시 성곽 길이 이어진다. 겨울 밤 내려다보이는 마을의 풍경이 왠지 짠하다.

 내리막길을 걷다 보면 혜화문이 저만치 보이고, 길 끝에 오른쪽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나온다. ‘조용히 다니세요’라고 바닥에 적어놓았다. 골목을 따라 주욱 내려오면 지하철4호선 한성대입구역 3번 출구가 바로 나온다.

코엑스와 봉은사

코엑스는 하루 유동인구 15만 명에 달하는, 한국에서 가장 북적이는 곳 중 하나다. 그런데 여기서 불과 1㎞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조용한 산사가 하나 있다. 바로 봉은사다. 비록 지하철역에서 가깝지는 않지만 코엑스의 구불구불한 지하 미로를 뚫고 가면 비교적 힘들지 않게 봉은사 입구까지 닿을 수 있다.

 게다가 올해에는 코엑스 입구 밀레니엄 광장에 불빛으로 은하수를 만들어 놓아 볼거리도 있다. 겨울철 별자리인 오리온·쌍둥이·황소자리 등을 LED 조명으로 연출했다.

 지하철 2호선 삼성역 5번 출구와 6번 출구 사이의 통로를 지나면 코엑스 입구다. 바로 이곳이 밀레니엄 광장. 불빛이 찬란하게 설치해 놓은 은하수가 밤하늘 아래 펼쳐져 있다. 코엑스 입구로 들어서 영화관 메가박스 쪽을 향해 걷는다. 계속 앞으로 가다 보면 전구로 꾸며진 기둥과 또 다른 은하수 조명이 있다. 이곳을 거쳐 계속 곧장 걷는다. 계단을 내려와 더 걷다 보면 메가박스 입구가 나오는데 여기를 지나 맥도날드를 지나면 오른쪽에 출구가 있다. 이곳으로 나와 계단을 오르면 건너편에 봉은사가 보인다.

 길을 건너 봉은사로 들어간다. 코엑스의 북적이는 사람들이 어디 있나 싶게 이곳부터는 마치 산사와도 같은 적막함이 감돈다. 전체적으로 조명이 잘 돼 있으나 어두운 편이라 조심조심, 조용조용 걸어야 한다.

 봉은사는 신라 시대인 794년 지어진 절로, 오랜 세월 동안 서산대사·사명대사 등 불교계의 스승을 배출한 사찰이다. 조선 후기에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입구인 진여문으로 들어가면 조명을 이룬 5m 높이의 탑과 솟대가 성스러운 영역에 들어왔음을 깨닫게 한다. 봉은사는 법왕루와 대웅전을 중심으로 전체적으로 원형으로 돌아볼 수 있게끔 돼 있다. 도심에 있지만 산에 들어온 듯 고즈넉하다. 흙길을 밟으며 어두운 경내를 돌아보면 마음이 씻긴 듯한 느낌도 든다. 커다란 미륵대불상 옆에는 판전이 있는데, 이 현판의 글씨는 추사가 타계하기 3일 전 직접 썼다고 한다. 봉은사 앞에 삼성역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는 정류장이 있다. (위성 지도 등 자세한 코스 정보는 ‘mywalking.co.kr(발견이의 도보여행)’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글=이정봉 기자
사진=김상선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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