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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보는 세상] 誰知烏之雌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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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돌을 더듬으며 강을 건넌다(摸着石頭過河).’ 1978년 개혁·개방에 나선 덩샤오핑(鄧小平)의 말이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올해 펴낸 자신의 저서 『메가트렌드 차이나』에서 새로운 세계를 이끌어 가는 중국의 힘 여덟 가지 중 하나로 이를 들었다. 그는 돌을 더듬으며 강을 건너는 것을 시행착오를 허용하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으로 풀이했다. 그러나 이는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속담처럼 조심하고 신중하라는 말이다.

 아주 조심스러운 태도와 관련해 국척((跼蹐)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이 높다 하지만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고 땅이 두껍다고 하지만 조심해 발을 딛지 않을 수 없다는 국천척지((跼天蹐地)에서 나온 말이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정월편(正月篇)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하늘이 높다고 하지만 감히 굽히지 않을 수 없고(謂天蓋高 不敢不跼) 땅이 두껍다고 하지만 감히 조심해 걷지 않을 수 없다(謂地蓋厚 不敢不蹐)이 말을 외치는 것은 도리도 있고 이치도 있다(維號斯言 有倫有脊) 슬프다 지금 사람은 어찌해 독사요 도마뱀인가(哀今之人 胡爲虺蜴)’ 사람이 넓은 천지를 마음 놓고 걸을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독사나 도마뱀처럼 독을 품고 있는 정치인들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정월편에서 정치인에 대한 비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산을 낮다고 하지 마라, 뫼가 되고 언덕이 된다(謂山蓋卑 爲岡爲陵) 백성의 거짓된 말을 어찌해 막지 못하는가(民之訛言 寧莫之懲) 옛날 늙은이를 불러 꿈을 점쳐 묻는구나(召彼故老 訊之占夢) 모두 자신이 성인이라 하지만 누가 까마귀의 암수를 알리오(具曰予聖 誰知烏之雌雄)’. 이 역시 소인배들의 끝날 줄 모르는 정치 싸움을 나무라고 있다. 서로 자신이 위대하다고 자랑하지만 까마귀 암수를 구별할 수 없듯이 누가 옳은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서로 잘났다며 남을 헐뜯고 싸우는 상황을 가리켜 ‘누가 까마귀 암수를 알리오(誰知烏之雌雄)’라는 말이 나왔다. 꿩 등 여느 새들은 암수를 구별하기 쉬운데 까마귀는 똑같이 새카맣기 때문에 누가 까마귀 암컷과 수컷을 구분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정치판의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말에 해당한다. 연말 우리 국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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