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이번엔 삼성전자 때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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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삼성전자의 밀고로 대만 업체가 거액의 과징금을 물게 됐다”고 보도한 대만 TVBS의 10일 화면.

태권도 선수 양수쥔(楊淑君)의 실격 사건으로 악화된 대만 내 반한 감정의 불똥이 이번엔 삼성전자로 튀었다.

 대만 자유시보(自由時報)는 “삼성전자의 신고로 치메이(奇美)전자 등 4개 대만 기업과 LG디스플레이 등 5개 LCD 업체가 가격을 담합해온 사실이 드러나 유럽연합(EU)으로부터 사상 최고액의 과징금을 물게 됐다”고 12일 보도했다. 동삼(東森)신문 등 유력 일간지들은 삼성전자가 ‘밀고’를 했다며 이로 인해 양수쥔 사건 이후 잠복하고 있던 반한 감정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고 전했다.

 우즈양 타오위안현(縣) 현장은 최근 현 의회에서 “현(縣)정부의 조달 과정에서 합법적이고 선택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한국 제품을 택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겠다”고 밝혔다고 관영 중앙통신이 전했다.

대만 경제부의 한 관리도 “삼성전자는 상도의가 없다. 앞으로 두고 보겠다”고 말했다고 자유시보가 보도했다.

 지난 8일 EU 공정거래위원회는 대만·한국의 5개 업체가 LCD 패널 시장에서 가격담합 등 불공정 거래를 했다며 총 6억5000만 유로(약 98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대만의 치메이는 LG디스플레이보다 8500만 유로 많은 3억 유로(약 45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아 가장 많은 벌금을 내게 됐다. 삼성전자는 가장 먼저 자진신고를 한 경우 담합 혐의가 확인돼도 처벌을 면해주는 규정(리니언시)에 따라 과징금 부과 대상에서 제외됐다.

 감독 당국의 조사 결과 이 기업들은 2001년 10월~2006년 2월 60여 차례 만나 최저가격을 정하는 등 가격 담합행위를 했으며 신제품 개발 계획과 공장가동률 등 생산량과 마케팅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 정보를 공유했다.

 ‘삼성전자 때리기’는 치메이의 대주주인 훙하이(鴻海)그룹 궈타이밍(郭台銘) 이사장이 앞장서고 있다. 궈 이사장은 “LCD 패널 최대업체인 삼성전자를 빼고 대만기업들이 뭉쳐 가격 담합이 가능하겠느냐”며 “가격 담합의 주체인 삼성전자가 밀고 규정을 이용해 과징금 처벌을 면했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는 이번에 과징금을 면제받았지만 지난 5월에는 EU로부터 반도체 가격 담합 혐의로 1억4572만 유로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국내 반도체 제조업체인 하이닉스도 과징금 대상이 됐다. 당시 담합 사실을 먼저 인정한 미국 마이크론은 제재 대상에서 제외했다.

홍콩=정용환 특파원, 문병주 기자

◆리니언시(leniency)=1978년 미국에서 처음 시행됐다. 국내에는 97년 도입됐고 EU 40개국이 시행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도 리니언시를 활용한다. 삼성전자는 지난 10월 시스템 에어컨 담합 혐의로 적발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7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당시에는 LG전자가 리니언시를 활용해 과징금을 면제받았다. 업계에서는 경쟁업체를 고발하면 면죄부를 주는 이 제도가 불신을 조장한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행정당국이나 소비자의 입장에선 담합을 근절하고 소비자 권리를 보호하기에 이만한 제도는 없다는 시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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