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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앙코르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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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호 05면

“좀 길지만 끝까지 연주해 보겠습니다.”
피아니스트 말에 환호가 터졌습니다. 지난달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김선욱의 독주회였죠. 청중의 기쁨은 앙코르 때문이었습니다. 무소르크스키 ‘전람회의 그림’이었죠. 11개 곡이 모여있고, 중간중간 전주가 반복돼 모두 열다섯 부분인 작품입니다. 앙코르 시간만 30분을 훌쩍 넘겼습니다. 김선욱은 “내년엔 한국 연주가 없으니 작별인사를 하려고 했다”며 “‘전람회의 그림’에 대한 아이디어가 더 생겨 꼭 연주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김호정 기자의 클래식 상담실

김선욱의 앙코르가 화제였던 것이 연주 시간 때문 만은 아니었습니다. 예상됐던 앙코르보다 큰 선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전람회의 그림’은 체력과 지구력ㆍ집중력이 필요해 보통 피아니스트들이 독주회의 ‘메인 요리’로 내놓는 난곡이죠. 비유하자면 김선욱은 레스토랑 메인 코스가 끝났는데 묵직한 고깃덩어리를 하나 더 ‘테이크 아웃’ 해주는 서비스를 베푼 셈입니다.

‘앙코르=쉽고 재미있는 음악’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입가심용 말입니다. 하지만 앙코르는 ‘디저트’라기보다 주방장 재량에 따르는 ‘오늘의 메뉴’, 바리스타가 자신 있게 선보이는 ‘오늘의 커피’에 가깝습니다. 피아니스트 루돌프 제르킨(1903~91)은 1920년 베를린 데뷔에서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연주한 후 획기적 앙코르를 선보였습니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었죠. 테마와 31개의 변주로 이뤄진 대곡입니다. 피아니스트가 해석하는 ‘진짜 바흐’를 원 없이 보여줬죠.

청중의 성화에 못 이겨 즉흥으로 앙코르를 하는 연주자는 드뭅니다. 대부분 미리 계획돼 있죠. 어차피 준비하는 거, 아예 기획하는 건 어떨까요? 이달 초 서울시립교향악단은 베를린필하모닉의 플루트 단원인 에마누엘 파위를 협연자로 초청했습니다. 프로그램 북에 ‘앙코르-도플러 작곡의 리골레토 환상곡’이라고 적어 놨더군요. 서울시향의 플루트 단원 박지은씨가 파위와 함께 연주했습니다.

이처럼 디저트가 기대되는 만찬도 있는 법입니다.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닉은 매해 12월 30일에서 다음 해 1월 1일에 걸쳐 신년 음악회를 엽니다. 세계적 지휘자들을 바꿔 가며 무대에 세우죠. 올해의 지휘자에 세계 음악계가 주목합니다. 여기서 전통적으로 연주되는 앙코르가 J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입니다. 지휘자마다 익살맞게, 호탕하게, 즉 개성 넘치게 들려줍니다. 매년 공통 과제곡인 이 앙코르 재미가 쏠쏠합니다.

그런가 하면 베를린 필하모닉은 매년 여름 발트뷔네 숲속 공연에서 ‘지정 앙코르’를 들려줍니다. ‘베를리너 루프트’, 즉 ‘베를린의 공기’라는 음악입니다. 베를린의 비공식 ‘시가(市歌)’라 할 만큼 인기 많은 곡이죠. 빈과 베를린의 앙코르를 비교해 보면 마치 음악적 전통에 대한 자존심 대결을 보는 듯합니다. 앞으론 또 어떤 앙코르가 청중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진짜 메시지가 숨어있는 ‘추신’을 읽는 것처럼 설렙니다.

A 연주자가 추천하는 ‘오늘의 메뉴’


김호정씨는 중앙일보 클래식ㆍ국악 담당 기자다. 서울대 기악과(피아노 전공)를 졸업하고 입사, 서울시청ㆍ경찰서 출입기자를 거쳐 문화부에서 음악을 맡았다. 읽으면 듣고 싶어지는 글을 쓰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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