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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부품, 인쇄기로 찍어낸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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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김동수 박사가 전자 소자 인쇄기로 인쇄한 전자 꼬리표를 살펴보고 있다. 김 박사팀이 개발한 이 인쇄기는 세계에서 가장 정밀하고,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사진 왼쪽이 인쇄기다. [한국기계연구원 제공]


대전 대덕연구단지 내 한국기계연구원의 김동수(51) 박사팀 연구실에는 고속 인쇄기가 있다. 책이나 홍보 전단을 찍어내는 흔한 인쇄기가 아니다. 원통 막대에 두루마리식으로 감겨 있는 사진필름 비슷한 비닐 위에 전자꼬리표(태그)나 박막 태양전지, 충전이 가능한 리튬전지 등을 연속 인쇄해 낸다. 전자소자 인쇄기기, 일명 ‘롤투롤(Roll-to-Roll)’ 장비다.

 각국의 글로벌 기업과 연구소가 고성능 롤투롤 장비 개발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는 가운데 김 박사팀 개발품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가장 가늘게 전자회로를 인쇄할 수 있고 인쇄 정밀도도 가장 높다. 회로 가늘기인 선폭(線幅)을 7㎛(0.007㎜)까지 줄였다. 이는 전통적인 반도체 공정이 아니라 인쇄 기술로도 전자종이 등 각종 디스플레이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이다. 선폭을 10㎛ 이하로 줄인 곳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쇄 정밀도도 외국산에 비해 네댓 배 정밀하다. 인쇄기에 걸린 두루마리 비닐이 10여 개에 가까운 원통 막대를 거치기 때문에 원하는 위치에 정확하게 인쇄하는 것이 중요하다. 엉뚱한 부위에 회로가 인쇄되면 불량률이 높아진다. 기존 기기들은 그 인쇄 위치 오차가 40~50㎛였으나 김 박사의 개발품은 10㎛에 불과하다. 분당 인쇄 속도도 60m에 이른다. 전자꼬리표를 인쇄한다고 치면 크기에 따라 1분에 6000~2만 개가 인쇄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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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인쇄전자 전시회’에 출품했을 때도 각국 연구진들이 놀라워했다고 한다. 외국 연구소와 공동 연구를 해왔던 LG이노텍이나 LS전선·LG전자·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도 김 박사팀의 인쇄기에 큰 관심을 보였다.

 롤투롤 장비의 원리는 전기가 통하는 잉크, 반도체성 잉크, 전기가 통하지 않는 잉크 등 여러 종류의 잉크를 인쇄기에 장착한 뒤 잉크젯 프린터나 그라비어(오목)인쇄기처럼 필름 위에 뿌려주는 것이다. 전자꼬리표를 생산한다고 할 때, 필름 위에 전기가 통하는 잉크-반도체성 잉크-전기가 안 통하는 잉크-전기가 통하는 잉크 순으로 덧씌우듯 뿌려 최종 제품을 만든다.

 롤투롤 장비로 인쇄된 필름형 태양전지를 옷이나 가방에 붙이고 다니면 휴대전화를 충전할 수 있고, 전자꼬리표를 쇼핑센터가 상품에 붙여 놓으면 물건을 계산대에 올려놓지 않아도 자동으로 계산된다. 재충전이 가능한 리튬전지도 김 박사팀이 처음으로 인쇄해 만들었다. 전자 약봉지에 전자꼬리표와 혈당 측정센서, 리튬전지를 부착해 놓으면 환자가 제 시간에 약을 복용했는지 여부라든지, 혈당이 어느 정도인지를 의사가 알 수 있다. 전자 약봉지에 휴대전화를 대면 그 정보가 의사에게도 전달되기 때문이다.

 롤투롤 산업의 세계 시장은 올해 약 4조원으로, 2019년에는 약 60조원으로 급팽창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 박사는 전자소자의 인쇄기술 초기 단계인 2000년에 이 기기의 개발에 나서 10년 만에 세계 최고봉에 섰다. 그는 “이번에 개발한 장비를 2013년께 상용화해 세계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롤투롤=두루마리 필름이 인쇄기에서 10여 개의 원통 막대에 걸쳐져 지그재그로 이동하면서 인쇄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R2R’로 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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