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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돼지·소 지켜라” 축사엔 생석회 눈 온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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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구제역이 확산되면서 경기도축산위생연구소도 비상이 걸렸다. 연구소 산하 가축연구팀 직원들이 8일 오전 한우(씨소) 축사를 소독하고 있다. [경기도축산위생연구소 제공]


경기도 축산위생연구소 가축연구팀 직원 15명은 구제역이 발생한 지난달 29일부터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특히 축사를 담당하는 직원 7명은 가축연구팀 내 관사와 축사만 오가며 감옥생활(?)을 하고 있다. 친구를 만나거나 가족모임에 참석하는 일은 꿈도 못 꾼다. 사람이 2명 이상 모인 곳은 곧 ‘접근금지 구역’이다. 행여 연구소에 구제역 균을 옮아올까 두려워서다. 주석천 연구사는 “축사 담당자들은 가족도 못 만나고 휴대전화로 목소리만 듣는다”고 말했다. 방역은 전쟁 상황을 방불케 하는 ‘비상’ 그 자체다. 모두 구제역이 만들어 낸 일이다.

 8일 오후 1시쯤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에 위치한 이 연구소 가축연구팀 정문. 문은 굳게 잠겼고 열려 있는 쪽문 옆에는 소독효과가 탁월한 흰색 석회가루가 쌓여 있다.

 사료 차량 등 일부 출입이 허가된 차들은 차량소독기로 곳곳을 소독을 한 뒤 석회 가루 더미를 지나야 한다. 그리고 축사로 들어가기 전 또 한 번 같은 과정을 거친다. 연구팀 사무실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축사로 올라가는 진입로에도 석회 가루가 군데군데 깔렸다. 축사 입구에는 소독약이 담긴 초록색 발판이 놓여 있다.

 “발판을 꼭 밟아 소독하십시오.” 주 연구사를 따라 들어간 축사에는 거뭇거뭇한 줄무늬가 있는 칡소 9마리가 ‘음매’하고 울었다. 칡소는 한우·흑우와 함께 우리나라에만 있는 토종 한우로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멸종위기에 놓이기도 했지만 최근 두수가 늘고 있다.

 축사에는 직원들이 소독 기기를 이용해 약을 연신 뿌리고 있었다. 투명한 소독약이 사방으로 날렸다. 축사 주변 출입로와 연구팀 사무실 등 시설 주변에도 방역용 차량이 왔다 갔다 하며 소독약을 살포했다.

 복제돼지 40여 두를 사육하는 돼지 축사에 들어섰다.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미돼지에 형질전환 복제배아를 이식해 당뇨병을 연구하는 축사다. 한 쪽에 복제돼지 수술실이 있어 수암생명공학연구소 연구원들이 일주일에 두 번 들러 실험을 한다고 했다. 그러나 현재는 구제역 여파로 이들의 방문도 금지다. 우수 품종 확보를 위한 도내 농가 방문도 안 된다. 임 팀장은 “빨리 구제역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며 “외부 접촉을 차단해서라도 그동안 어렵게 이뤄낸 연구성과를 지키겠다”고 말했다.

 경기도축산위생연구소 가축연구팀은 한우와 돼지 등의 우수 품종의 종자를 개발하는 가축개량과 칡소 등 우리 고유의 전통 가축(재래 가축)을 육성·보존 등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 한우 종우(씨소) 200두, 종돈 330두, 재래닭 885마리, 오골계 255마리가 연구용 등으로 사육되고 있다. 만약 가축연구팀 반경 2㎞ 안에 있는 농가에서 구제역이 발병한다면 그동안의 모든 연구는 물거품이 된다. 실제로 5월 우량종축을 생산하고 품종개량을 담당하던 충남 청양군의 충남도축산기술연구소에서 구제역이 발생해 사육 중인 돼지와 한우, 칡소 등 1500여 마리가 모두 살처분됐다. 직접적인 피해금액도 25억여원에 달하지만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육종해 오던 종축과 보관된 정액 등이 모두 사라졌다.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국가자산 손실이다.

 경기도에는 26만5000두의 한우와 17만4000두의 젖소, 183만 두의 돼지, 3201만1000마리의 닭 등이 사육되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많다. 도축장·도계장·종돈장 등 축산시설도 1489개소에 달한다. 전국(5477개소)의 27.2%다.

 8일 현재 경북지역 구제역은 의심신고 43건에 양성 31건, 음성 11건, 검사 중 1건으로 집계됐다.

용인=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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