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발등의 불’ 경제 때문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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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사진) 미국 대통령이 ‘적과의 동침’을 택했다. 민주당과 진보진영의 반발을 무릅쓰고 공화당이 요구해온 ‘부자감세’ 연장안을 받아들였다. 대신 오바마는 공화당이 반대한 중산층 세금감면과 장기실업자 지원 연장안을 관철시켰다. 오바마와 공화당 지도부는 6일(현지시간) 이 같은 안에 합의했다고 백악관이 밝혔다.

 부자감세 철회는 오바마가 2008년 대통령선거 때부터 내세운 핵심 공약의 하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모든 소득계층에 적용했던 감세시한이 올해 말로 끝나는 데 맞춰 가구당 연소득 25만 달러(약 2억8000만원, 개인은 20만 달러) 이상 부자에겐 더 이상 세금을 깎아주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대신 중산층 이하에게만 세금감면을 연장해 주자는 게 오바마의 주장이다.

 하지만 공화당이 중산층만의 감세연장에 반대해 오바마는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공화당은 내년 1월 1일 새로 구성되는 하원에서 다수당이 된다. 공화당이 버티는 한 중산층 감세안의 의회 통과는 불가능하다. 그럴 경우 내년 1월 1일부터 모든 근로소득자의 소득세가 한꺼번에 오른다. 겨우 온기가 돌기 시작한 연말연시 소비심리가 다시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경기회복도 물 건너간다.

 게다가 공화당은 26주 이상 장기실업자 지원 연장안도 상원에서 부결했다. 200만 실업자 가정이 당장 주당 300달러(약 34만원) 안팎의 지원금을 받을 수 없게 됐다. 내년엔 700만 가구가 대상에서 탈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백만 서민가정이 극빈층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공화당은 오바마가 추진해온 러시아와의 핵군축 협상마저 보이콧하겠다고 별렀다.

 오바마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공화당과 계속 다투되 경제는 손을 놓느냐, 아니면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진보진영을 버리고 경제 살리기에 나서느냐. 장고를 거듭한 그의 선택은 후자였다. 오바마에겐 정치생명을 건 모험이다. 진보진영이 반발하면 자칫 2012년 대통령 후보를 뽑는 당내 경선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 벌써부터 2008년 선거 때 오바마의 든든한 후원세력이었던 진보단체 ‘무브온’이 부자감세 연장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오바마에겐 경제 살리기가 발등의 불이다. 2년 내에 경기를 회복세로 돌려놓지 못하면 진보진영의 지지를 받는다고 해도 대선에서 이기기 어렵다. 이번 합의안에 소비를 부추기는 경기부양성 세금감면 조치를 다수 포함시킨 것도 이를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남은 과제는 민주당 설득이다. 공화당이 지지해도 집안 단속을 못 하면 의회 통과가 어려울 수 있다. 세금 깎아주기 경쟁으로 불어날 정부 빚도 걱정이다. 이번 합의로 늘어날 정부 빚은 2년 동안에만 9000억 달러(약 10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2년 뒤 경기가 살아나면 오바마는 웃겠지만 경기가 계속 바닥이면 원칙을 저버린 그에게 비난의 화살이 집중될 공산이 크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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