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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힘 악용, 사업 기회 가로채는 일 잦아 지탄

중앙일보

입력

중국의 유력 주간지 ‘간천하(看天下)’는 최근 차세대 지도자 시진핑을 화보로 실었다. ‘시진핑이 중앙군위(軍委)로 돌아왔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특집기사였다. 기사에는 싱가포르의 원로 리콴유(李光耀)의 시진핑 인물평과 시진핑이 빈곤지역 구이저우(貴州)를 시찰하면서 재난을 당한 주민을 위로하는 모습, 칭화대학 입학기념 사진이 실려있었다. 마지막 사진으론 시중쉰의 아들인 ‘명문 후예’임을 보여주었다.

부모 세대에 이어 중국 정치를 움직이는 ‘태자당’이란 단어는 중국 사회에서 매우 민감하다. 라오바이싱(老百姓:보통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싶어 인터넷 블로그에 ‘태자당’이란 운을 띄웠다. 그러자 한 블로거가 댓글로 “부모 덕을 봐서 고위직에 올라간 공직자. 국가 세금을 좀먹는 작자들”이라고 썼다. 이어 한국에서도 알 만한 중국 고위층 인사들과 자녀들 이름·현직을 쭉 열거했다. 이 댓글은 1분쯤 뒤 화면에서 갑자기 삭제됐다. 그러자 그는 “내 글이 이렇게 빨리 삭제되다니”라고 불만을 터뜨리는 댓글을 달았다. 조금 뒤엔 그것마저 삭제되고 말았다. 다른 댓글에선 “영향력 있는 부모의 신분을 이용해 가장 쉽게 국유기업의 고위층에 오르는 사람들”이란 내용도 있었다.

중국 언론인들에게 ‘태자당’을 묻자 그들은 대뜸 반(半)농담조로 “중국에 대한 험담 기사를 쓰려고 하느냐”고 반문했다. 얼마나 민감하고 부정적인 단어로 통용되는지 실감이 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국인은 태자당이 지탄받는 데 대해 ‘경제적 기회를 독점하는 것이 주 원인’이라고 했다. “개혁개방 초기에는 누구든 돈을 벌 기회가 비교적 공평했다. 하지만 요즘 태자당들이 관시를 이용해 비즈니스 기회를 가로채는 경우가 많아졌다. 공평하지 않은 게임을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중국인 친구는 “외국에선 언론이나 공공기관이 특권층의 불공정 행위를 견제하지만 중국에선 태자당을 마치 국가기밀인 것처럼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자당을 꼬집는 유행어 중에는 “직업: 손자, 가짜 손자가 아니라 진짜 손자(職業: 孫子,不是 裝孫子,是眞孫子)”라는 표현이 있다. ‘가짜 손자(裝孫子)’ 표현은 베이징 방언에서 욕설에 속한다. 마오쩌둥의 손자 마오신위(毛新宇)에서 유래됐다. 군 장성이 된 그는 평소 “우리 할아버지가 말이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태자당을 둘러싼 최신 유행어는 “우리 아버지는 리강(我是李剛)”이다. 이는 환구시보(인민일보 자매지)가 ‘올해 10대 뉴스’로 뽑은 뺑소니 사고를 압축하는 말이다. 10월 중순 고급 승용차를 탄 20대 청년이 허베이대학 교정을 쏜살같이 달리다 두 명의 여대생을 치어 그중 한 명이 숨졌다. 그러나 청년은 차를 계속 달려 여자친구를 기숙사에 바래다 준 다음 태연하게 학교를 빠져나오려 했다. 성난 학생들과 대학 경비원들이 포위하자 그는 사죄는커녕 “고소하려면 해 봐라. 우리 아버지가 리강이다!”라고 고함을 쳤다. ‘리강’은 해당 지역 공안국 부국장의 이름이었다. 이후 누리꾼 사이에서 “우리 아버지는 리강!”이라는 표현은 ‘기고만장하는 못된 태자당’을 지칭하는 뜻으로 쓰인다.

써니 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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