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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에 두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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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현직 대통령 그바그보.

한 나라에 두 명의 대통령이 같은 날 취임식을 하는 초유의 사태가 아프리카 서부 연안의 코트디부아르에서 일어났다. 현직 대통령이 대선 패배에 불복하며 퇴임을 거부한 데다 선거관리위원회와 헌법위원회가 각기 다른 결정을 내린 탓이다.

 현 대통령 로랑 그바그보는 대선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4일(현지시간) 오후 수도 아비장의 대통령궁에서 취임식을 강행하고 5년의 새 임기를 시작했다. 그바그보는 군부와 최고 법률기구인 헌법위원회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있다. 결선에서 승리한 것으로 발표됐던 알라산 와타라 전 총리도 몇 시간 뒤 별도의 대통령 취임선서를 했다.

 코트디부아르 선관위는 2일 대선 결선투표에서 와타라 전 총리가 54.1%의 득표율로 45.9%를 얻는 데 그친 그바그보 대통령을 꺾고 승리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헌법위원회가 일부 선거구의 선거 부정을 이유로 이를 번복하고 그바그보의 승리를 선포했다.

대선에 당선된 와타라 전 총리.

 일부 지역에서는 승리를 빼앗긴 와타라 전 총리의 지지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폭력시위에 돌입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4일 수도 아비장에서는 와타라 전 총리의 지지자들이 도로를 차단하고 시위를 벌였고 진압 과정에서 시위대 2명이 보안군의 총에 맞아 숨졌다.

 또 반군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북부 일부 지방에서도 와타라 전 총리의 지지자들이 시위에 나서면서 내전 재발 우려도 낳고 있다. 세계 최대의 코코아 산지인 코트디부아르 정부는 2007년 북부 반군과 평화협정을 체결했으나 반군의 무장해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그바그보 대통령이 국토의 절반가량인 북부 지역에서 제대로 통치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그바그보 대통령에게 선거 결과를 수용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성명을 내고 “선관위에 의해 투명하고 신뢰성 있는 결선투표 결과가 발표됐음에도 불구하고 코트디부아르에서 교착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데 대해 깊이 우려한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와타라 전 총리가 정당한 승자이며, 그의 승리는 존중돼야만 한다고 촉구했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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