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현대차, 세이프가드·관세 피하려 미국 공장 확장 검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협상으로 국내 차 업계가 기대했던 한·미 FTA의 대미 수출 기대효과는 일단 5년 이후로 미뤄지게 됐다. 또 국내 차 업계는 미국 현지 생산을 늘려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품관세(4%)는 예정대로 철폐하기로 해 자동차 부품 업체는 혜택을 보게 됐다. 미국 자동차업체들은 한국 내에서 판매를 늘릴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현대·기아차 대미 수출 영향=한국산 승용차에 대한 관세는 애초 3000cc 미만은 발효 즉시, 3000cc 초과 차량은 3년 이내에 폐지하기로 했던 것을 이번 합의에서는 배기량에 관계 없이 발효 후 5년째에 철폐하는 것으로 늦춰졌다. 이렇게 되면 한국산 승용차의 미국 판매 가격을 빨리 내리기 힘들어진다. 수출에 영향을 받는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누가 봐도 기존 합의에 비해선 후퇴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미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대·기아차는 미국 앨라배마와 조지아 공장의 현지생산을 갈수록 늘리는 대신 완성차 수출을 줄이고 있어 어차피 관세 철폐는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대·기아차의 미국 현지 생산은 지난해 21만여 대에서 올해는 45만여 대로 늘었다. 전체 판매 차량 가운데 현지생산 비중도 같은 기간 31%에서 47%로 급상승했다.

 관세 철폐가 늦춰짐에 따라 국산차의 미국 수출을 주도하는 현대·기아차는 미국 현지생산에 초점을 더 맞출 수밖에 없게 됐다. FTA 발효 후 4년 동안은 국내에서 미국으로 차를 실어 나를 때 관세가 계속 붙어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대미 승용차 수출의 80% 이상을 맡고 있는 현대·기아차는 당장 수출 및 현지 생산계획의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현대차는 2012년 이내에 앨라배마 공장 부지에 연산 30만 대 규모의 2공장 착공을 고려하고 있다.

 미국이 발동할 수 있는 세이프가드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현지생산이 유리하다. 현재 8% 정도인 현대·기아차의 미국 시장 점유율이 10% 정도로 올라가면 미국이 어떤 식으로든 대응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있다. 국내 완성차 업체의 한 임원은 “중요한 것은 우리 정부가 앞으로 후속 모니터링을 잘하는 것”이라며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의 관련 규정을 확대 해석하거나, 세이프가드를 사용하려는 조짐이 있으면 ‘FTA까지 체결해 놓고 이래선 곤란하다’고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GM대우는 젠트라 등 소형차를 연간 4만∼5만 대가량 미국에 수출하고 있지만, 내년부터는 시보레 브랜드를 들여올 예정이어서 한·미 FTA에 중립적인 입장이다. 게다가 자동변속기 등 부품 수출이 늘어 손해볼 게 없다는 계산이다. 르노삼성과 쌍용차는 북미 수출이 없다.

일본 수입차 업체들, 관세 피하기 위해 미국공장 생산 차 국내로 ‘우회 수입’ 검토

북미 수출이 많은 만도 같은 대형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수출 증대가 예상된다. 자동차 부품은 가격 및 품질 경쟁력 확보로 2008년부터 대미 수출이 매년 15% 이상 급증하고 있다. 올해만 대미 수출이 40억 달러에 달한다.

 픽업트럭·전기차는 생각만큼 걱정할 부분이 아니란 분석이 많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픽업트럭은 미국 업체의 경쟁력이 좋아 어차피 국내 업체가 큰 관심을 두진 않았다”며 “국내 업체도 좋은 픽업트럭을 개발할 능력은 충분하지만 초기 투자비가 너무 많이 든다”고 말했다. 주요 국산차 업체는 전기차의 경우에도 4~5년 안에 대규모 판매가 이뤄지기 어려워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국산차 업체 임원은 “한국이든, 미국이든 4~5년 안에 상대국 시장에 제대로 팔릴 순수 전기차를 내놓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 마련한 미국차=한·미 FTA가 발효되면 국내에 들어오는 미국산 승용차에 붙는 관세는 8%에서 4%로 즉시 인하되고 5년째부터는 관세가 철폐된다. 특별소비세(2000cc 초과 차량) 역시 현행 10%에서 3년 내 5%로 인하돼 배기량이 높은 차가 많은 미국 업체에 유리해진다. GM·포드·크라이슬러 등 미국 수입차는 관세가 완전 철폐될 경우 7.4% 정도 가격 인하 효과가 생긴다. 5000만원짜리 미국차는 370만원 가격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들이 미국차를 선호하지 않아 판매가 큰 폭으로 늘지는 않을 전망이다. 미국차의 올해 국내 판매 대수는 7000대 정도로 수입차 전체 시장의 8% 에 그치고 있다.

 중앙대 이남석(경영학) 교수는 “미국차가 한국에서 판매가 부진한 것은 기본적으로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최근 미국 업체들이 연비와 상품성 개선에 주력하고 있어 중장기적으로 한국시장 점유율을 늘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안전기준 완화는 상당한 특혜다. 미국 차는 제작사별로 연간 2만5000대까지 미국 안전기준을 통과하면 국내 판매가 가능해진다. 복잡한 인증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돼 다양한 모델을 들여올 수 있게 됐다.

 도요타·혼다·닛산·스바루 등 일본 수입차 업체들은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 공장을 통해 국내로 우회 수입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도요타는 캠리·라브4, 혼다는 어코드의 수입물량을 일본 생산분에서 미국 공장 생산분으로 바꿀 방침이다. 이미 미국에서 생산한 차를 들여오는 닛산(알티마)과 스바루(아웃백)는 미국 현지생산 모델을 더 늘릴 계획이다.

김태진·김선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