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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소탐대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95호 02면

김정일의 두뇌 회전은 빠르다. 북한 국방위원장과 만난 사람들의 공통적 평판이다. 일본 전임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 러시아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은 그렇게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도 생전에 그런 평가를 했다. 민첩한 머리 회전은 세밀한 손익계산에서 출발한다. 김정일은 연평도 공격의 득실을 따지고 있을 것이다.

박보균의 세상 탐사

남한 공격은 내부에 긴장감을 넣어준다. 북한 사회에 청년대장 김정은의 위세를 과시했다. 세습 권력의 체제 장악력을 키운다. 북한은 그 부분을 이익으로 칠 것이다. 반면 남한 사회에는 대북 반격의 거대한 흐름이 형성됐다. 김정일 위원장은 본능적으로 그 대목을 주목했을 것이다. 그것은 북한에 중대 손실이다.

민간인 공격은 야만과 잔혹의 상징이다. 피카소의 대표작 게르니카는 그 광기(狂氣)와 악행을
고발했다. 스페인 내전 때 게르니카의 민간인들은 무차별 공습을 당했다. 연평도 민간인 포격은 게르니카적 만행이다.

북한을 향한 시선은 싸늘하다. 연평도 피격 이후 한국 상황이다. 적개심과 응징 의지는 커졌다. 호전성에 대한 환멸을 재생시켰다. 해병대의 독특한 신화는 우리 사회 애국주의의 기세를 북돋았다. 반공(反共)을 국가 이념으로 삼자는 견해는 절대 다수(85.5%)가 됐다(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동아시아연구원·중앙일보 공동여론조사, 12월 4일자). 3류 종북 세력은 더욱 위축됐다.

북한은 핵무기를 폐기하지 않는다. 연평도 공격은 그 점을 실감시켰다. 북한 경제는 거덜났다. 핵은 그런 정권의 존립을 보장한다. 핵은 스위스제 맥가이버 칼이다. 착한 거지는 무시당한다. 칼을 가진 거지는 다르다. 때로는 호탕한 깡패로 대접받는다. 상대방은 칼을 의식한다. 깡패의 최대 위협은 ‘너 죽고 나 죽자’다. 핵은 공멸의 그런 협박 무기다. 핵은 최빈국(最貧國) 지도자의 국제적 신분을 상승시킨다. 미국과 맞상대하게 했다. 한국은 쌀을 주면서도 눈치를 봤다. 핵무기의 절묘한 효용 가치다.

김정일은 그 가치를 터득했다. 북한은 핵의 매력에 집착한다. 핵 없는 김정일은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의 통치자일 뿐이다. 그 때문에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햇볕을 강하게 쪼아도, 체제 보장을 해줘도 마찬가지다. 화해의 햇볕은 하수(下手)다. 북한의 핵 전략은 햇볕정책을 압도했다.

6자회담은 별로 쓸모없다. 의장국 중국은 재미 봤다. 연평도 도발은 6자회담의 한계를 확인해 주었다. 6자회담은 북한 핵의 평화적 해법을 마련하지 못했다. 회담은 환각제였다. 북한 핵은 우리 문제다. 하지만 6자회담은 강 건너 불구경하게 했다. 안보의 방관자적 현상이 퍼졌다. 북한은 핵 무장의 시간을 벌었다. 중국은 중재와 심판자 행세를 했다. 한반도의 영향력을 과시했다.

중국은 북한을 비난하지 않는다. 천안함 때도 연평도 때도 그렇다. 대신 중국은 6자회담을 제안했다. 그 순간 다수 한국인은 중국 외교의 진면목과 속셈을 깨달았다. 한국 사회의 혐중(嫌中) 감정은 커졌다. 6자회담은 신뢰를 잃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물과 물고기의 관계를 중시했다. 그런 심리전 측면에서 중국의 이미지는 치명적 상처를 입었다.

김정일 정권의 생존 방식은 2중성의 조화다. 대화와 협박을 섞는다. 그 수단은 핵무기와 6자회담이다. 하지만 핵과 6자회담의 실체와 노림수가 드러났다. 연평도 학습 효과는 반전(反轉)의 계기를 제공했다. 한국인의 학습능력과 각성은 특별나다. 북한의 공격 성공은 일시적이다. 이제는 결정적 패착과 악수(惡手)로 바뀌고 있다. 북한의 소탐대실(小貪大失)이다. 소탐대실로 확실히 굳혀야 한다.

게임은 지금부터다. 김정은 세습체제의 안착까지 도발은 이어진다. 군사적 응징, 핵 대응, 대중국 외교전, 민심 통합은 정교해야 한다. 이명박 정권은 시험대에 계속 서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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