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j Insight] “포격에 기업 위축? 우린 이스라엘 정부의 보호 믿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8면

‘오마하의 현인(賢人)’ ‘가치투자의 대가’로 불리는 워런 버핏의 지주회사 버크셔 해서웨이가 지분의 절반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이외의 기업이 한 곳 있다. 바로 이스라엘의 세계적인 절삭공구 업체 IMC그룹이다. 버핏 회장이 그 많은 세계의 우수 기업 가운데 ‘중동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이스라엘의 기업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잘 아는 회사에 투자한다’는 투자 원칙에 따라 코카콜라 같은 회사에 주로 투자해온 그가 기술력을 가늠하기 쉽지 않은 절삭공구 업체를 고른 이유가 궁금했다. 최근 한국을 찾은 제이콥 하파즈(59) IMC그룹 최고경영자(CEO)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 전쟁 위험 속에서도 꿋꿋이 회사를 성장시키고 있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우리의 정부(이스라엘)를 믿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창규 기자

●이스라엘은 한국 이상으로 국민이 전쟁 위험 속에서 사는 국가다. 어떻게 기업 경영이 가능한가.

 “간단하다. 한마디로 우리는 기업인이 통제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에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신경 쓰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반드시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을 할 때 비가 온다는 예보를 들었다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가? 비는 우리가 어떻게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가항력적인 것에 힘을 빼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2006년 레바논과 분쟁이 있었을 때 IMC는 평소와 다름없이 정상적으로 운영됐다. 고객에게 납기를 약속했고 우리는 그 약속을 지켰다. 우린 정치인이 아니라 기업인이다.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이다.”

 2차 이스라엘-레바논 전쟁은 2006년 헤즈볼라가 국경지역에서 이스라엘 군인 2명을 납치한 사건으로 발발했다. 레바논과 이스라엘에서 각각 1200여 명과 160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할 정도로 참혹한 전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공장(서갈릴리 지역 테펜공업지대 위치)을 정상 가동시킬 수 있었을까.

●직원이 다칠 위험이 있었을 텐데.

 “직원을 강제로 출근하게 하지는 않았다. 원하는 사람만 나오라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나왔고 이 때문에 정상 조업을 할 수 있었다.”

●‘연평도 사태’에 대해 들었을 것이다. 한국은 이 정도의 포격만 있어도 기업인이 불안해 한다. IMC는 불안하지 않나.

 “우린 우리의 정부를 믿는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정부가 우리를 보호할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매일의 현실(그동안 이스라엘이 대응한 사례)을 보면 알지 않는가.”

●외국 전문가들은 한국에 북한 공격과 같은 ‘컨트리 리스크’가 있다고 말한다. 이스라엘도 이런 게 있다고 보나.

 “있다. 지난 62년간 계속 있어왔다. 다시 말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을 걱정하는 것은 시간낭비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대처하느냐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이스라엘 기업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계를 두지 않는 것과 목표를 갖고 움직이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역사적으로 우린(유대인) 세계 각국에 흩어져있다 다시 뭉쳤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는 ‘외국인’이라는 개념이 희박하다. 때문에 열린 사고가 가능하며 환경변화에 적응이 비교적 쉽다. 때문에 운영이 수월하고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며 또한 제각각 다른 기능을 할 수 있다. 한국은 좀 다르다. 5000년 역사를 가지고 한곳에서 살아왔다. 반드시 한 가지 합의점을 도출해야 만족하는 한국인의 사고가 우리에게는 생소하다. 우리는 논쟁을 한다. 의견도 분분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각각 다른 의견 속에서 가치를 찾아내고 이를 존중한다.”

●버핏 회장이 투자를 결정할 때 분쟁지역이라 부담스러워하지는 않았나.

워런 버핏

“그는 신경 쓰지도 않았고 망설이지도 않았다. IMC는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이다. 그는 IMC와 대구텍(IMC가 인수한 한국 기업)의 기업문화를 특히 마음에 들어 했다.”

 버핏 회장은 2006년 IMC의 지분 80% 인수를 발표하면서 “2005년 베르트하이머 IMC 회장으로부터 비즈니스 파트너를 찾는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던 회사가 비즈니스 파트너가 필요한 이유가 궁금했다.

●버핏 회장에게 투자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낸 이유는 무엇인가.

 “IMC는 베르트하이머 일가가 ‘이스카’라는 단일 기업에서 시작해 지속적으로 확장·성장시켜온 기업이다. 베르트하이머 회장은 회사의 규모를 세계적으로 키우는 데 주식시장의 힘을 빌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는 회사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인 기업문화를 지키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 점이 버핏 회장에게 가장 큰 공감을 이끌어냈다.”

●IMC가 가장 중시하는 사업 원칙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혁신을 통한 성장(Growth through Innovation)’이다.”

●버핏 회장은 IMC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

  “그는 IMC에 투자하며 단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해오던 것처럼 그대로 지속적으로 운영하라. 나를 마치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버핏 회장이 투자할 때보다 지금 매출이 두 배가량 성장했다. 한국의 대구텍도 IMC가 1998년 인수했을 때보다 매출이 7배가량 성장했다.”

●성장이 놀랍다. 비결은 무엇인가.

 “비결은 없다. 열심히 하는 것(just hard work) 외에 왕도가 있는가. 굳이 예를 들자면, 옳은 방향을 설정하고 한번 설정한 방향에 전력투구하는 것이다. 또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 등 성공하는 방법은 ‘정도’밖에 없다. 주위를 둘러보라. 많은 제조업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엔지니어가 더 나은 기술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이들보다 돋보이기 위해서는 열심히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있으면 가르쳐 달라. 제조업은 독창성(originality)이 정말 중요하다. 고객에게 인기 있는 경쟁사의 제품을 복제해주는 데는 1주일, 또는 더 짧은 시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IMC와 대구텍은 최고의 두뇌가 모여 엄청난 투자와 시간으로 혁신적인 신제품을 개발하는 데 짧게는 6개월, 길게는 몇 년의 시간을 들인다. 절삭장비에 5억원을 투자한 고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복제한 절삭공구를 싸게 사서 제품을 만들어내는 눈앞의 이익이 아니다. 충분한 투자수익률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제대로 만든 혁신적 공구다. 2009년 세계 금융위기 때를 제외하면 우린 해마다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하고 있는 방식이 옳다는 방증이 아니겠는가.”

●IMC 기업문화가 한국과 상당히 비슷한 것 같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최근 IMC그룹을 방문해 경영진과 기념 촬영을 했다. 오른쪽부터 제이콥 하파즈 IMC그룹 CEO, 스테프 베르트하이머 IMC 창업자 겸 명예회
장, 버핏 회장, 에이탄 베르트하이머 IMC 회장(창업자의 아들).

“우리 직원은 회사와 강한 유대감이 있다. 왜냐하면 우린 직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2009년은 전 세계 기업이 모두 힘들었던 한 해였다. 그런데 경쟁사가 감원했던 것과 달리 우리는 모든 직원이 함께 고비를 넘겼다. 전 세계 IMC그룹에서는 단 한 명의 인원 감축도 없었다. IMC는 인재의 잠재력을 중시한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각각의 직원이 모두 다른 잠재력을 갖고 있고 우린 이 잠재력을 살릴 기회를 줄 뿐이다. 그리고 우리 회사의 복지시설은 다른 어떤 제조회사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한다.”

●주요 사업부문은.

스테프 베르트하이머가 자신의 집 뒤뜰에서 창업해 IMC그룹의 모태가 된 절삭공구 업체 이스카의 공장 전경. 서갈릴리 지역의 테펜공업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특별한 주력 사업부문이 있다기보다 전반적으로 다양한 절삭공구를 선보여 세계에서 성장 중인 다양한 분야에서 시장을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조선·자동차·항공·중공업·금형·철도·(의료부품처럼 세밀한)미니어처 등이 중요한 사업군이다. 시장의 잠재성이 큰 발전 산업도 중요하다.”

●65개국에 140여 개 자회사가 있다는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회사를 별 탈 없이 운용하나.

IMC의 자회사인 한국의 대구텍 본사. 대구 가창면에 있는 텅스텐 절삭공구업체 대구텍(옛 대한중석광업)은 1998년 IMC에 인수됐다.

“IMC의 회사는 상하 또는 수직관계가 없으며 상호의존적이지도 않다. 각각의 회사가 확실한 목표 아래 운영되고 있다. 이들이 제 몫을 하기 위해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체계적인 시스템이다. 모든 회사가 유기적으로 기능하면서도 이러한 체계화된 시스템 아래서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 실시간으로 원하는 정보를 시스템에서 찾아낼 수 있고 즉각 확인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노하우다. 우리는 이미 이 산업에서 중요한 일의 순위를 매길 수 있고 어떻게 꾸려야 하는지 알고 있다. 이런 두 가지 전제 조건 아래 ‘본사’는 ‘무엇을 하라’고 이것저것 요구하지 않는다. 필요할 때 지원만 하면 된다.”

‘대구텍의 모회사’ 절삭공구 업체 IMC 성장 비결

‘한번 직원은 영원한 직원 …’
IMC의 기업문화와 창의력
워런 버핏도 반했다

이스라엘은 한국의 경상도 크기에 불과하다. 북부 도시 하이파에 있는 해발 500m 카멜산 정상에 오르면 요르단·시리아·레바논 국경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다. 인구도 710여만 명이다. 독일 키펜하임에서 태어난 스테프 베르트하이머(84·현 명예회장)는 1937년 이스라엘로 이주한다. 16세에 학교를 자퇴하고 카메라 수리상에서 일하던 그는 1943년 영국 공군에 입대해 광학 설비 기술자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1952년 나하리야에 있는 자신의 집 뒤뜰에서 ‘이스카’라는 작은 절삭공구 회사를 차린다. 이 회사는 매년 성장을 거듭해 갈릴리 지역의 테펜공업지대에 기반을 잡는다.

 기술개발에만 열중하던 이 회사는 이스라엘 최대의 절삭공구 업체로 성장한다. 하지만 난관에 부닥친다. 이 회사는 자금난에 빠진 적도 없고 부채도 전혀 없다. 그러나 세계적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자본뿐만 아니라 인지도가 필요했다. 세계 일류 기업을 꿈꾼 베르트하이머 회장은 결단을 내린다. 2005년 세계적 투자가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에게 투자를 요청하는 한 통의 편지를 보낸다. 30년간 국외 투자를 하지 않던 버핏 회장은 베르트하이머 회장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여 2006년 5월 이 회사의 지분 80%를 40억 달러에 인수한다. 그가 처음으로 해외 기업을 인수한 것이다. 보수적 투자가로 잘 알려진 버핏 회장은 “이스라엘 땅에 투자한 것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열정과 창의력으로 가득 찬 두뇌에 투자했다”고 말했다. 버핏 회장은 3년 전 한국을 방문해 “베르트하이머 회장으로부터 한 장이 조금 넘는 인상 깊은 편지를 받았다”며 “기업과 근로자 모두 훌륭한 기업이란 생각에 흥미를 느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투자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버핏 회장이 이런 투자결정을 한 데는 베르트하이머 회장이 이스라엘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 크게 기여했다. 가장 부유한 이스라엘인 가운데 한 명인 그는 이스라엘에 사회·경제적으로 많은 공헌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기부도 많이 한다. 이 때문에 그는 이스라엘 최고 영예의 이스라엘 상(Israel Prize)을 받기도 했다.

 ‘버핏 효과’는 컸다. 버핏의 투자 사실이 알려지자 바로 다음날 이스라엘 주가지수는 2.5% 급등했고 미국 달러화에 대한 이스라엘 셰켈화 가치는 1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유대인도 시오니스트(유대민족주의자)도 아닌 버핏 회장의 투자는 이스라엘 경제가 그만큼 건실하다는 뜻”이라며 반길 정도였다.

 버핏 투자 후 4년 만에 이 회사는 매출이 두 배가 될 정도로 초고속 성장을 했다. IMC의 자회사인 한국의 대구텍도 매년 10~20%씩 크게 성장했다. 대구 가창면에 본사를 둔 텅스텐 절삭공구 업체인 대구텍은 1952년 설립된 대한중석광업이 모태다. 94년 민영화 1호로 거평그룹에 넘어갔다 거평그룹이 부도나면서 98년 IMC에 인수됐다.

 제이콥 하파즈 IMC그룹 최고경영자(CEO)는 “대구텍의 경우 생산한 제품의 65%를 해외에 수출하고 있다”며 “대구텍이 벌어들인 외화로 다시 대구텍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IMC의 성공 이유로 독특한 기업문화가 꼽힌다. 한번 직원이 되면 직원은 기업과 함께 성장한다. 거의 모든 매니저급 직원은 수십 년간 함께 회사에 근무했다. 하파즈 CEO도 37년간 이 회사에 몸담았다. 또 이 회사는 위계질서가 있지만 가족기업처럼 운영된다. 20~30명의 매니저가 하파즈 CEO에게 직보할 정도로 소통이 원활하다.

 이스라엘에서 IMC 같은 기업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기술을 중시하는 이스라엘의 분위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세계 최고 수준의 벤처기업을 거느린 나라다. 2000년대 들어 세계 벤처펀드 중 31%를 점유할 정도다. 나스닥에 자국 회사 240여 개를 상장시켰다. 미국과 캐나다에 이어 가장 많다. 이스라엘 수출 중 60%를 하이테크가 담당하고 있다. 대학생 중 20%, 박사학위 소지자 중 50%가량이 과학 또는 의학 전공자다.

j 칵테일 >> 술은 마셨다 하면 물고기처럼 … 설명회도 10시간 하는 ‘강철’ CEO

1951년 이스라엘에서 태어났다.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링 학교 가운데 하나인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Technion Israel Institute of Technology)’를 졸업한 후 IMC그룹의 전신인 이스카에 1973년 입사했다. 그의 경영방식과 업계에 대한 통찰력은 워런 버핏 회장이 IMC에 투자하기로 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전문 엔지니어답게 지금도 신제품 기술개발(R&D)을 주도하며 시장의 흐름을 파악해내고 그룹의 전략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모든 직원이 스스럼없이 그의 방에 들어가 문제를 토의하며 해결책을 찾아내도록 하는 게 그의 소통방식이다. 중국 거래처와 만났을 때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물고기처럼’ 술을 마셔 ‘강철 위’를 가졌다고 표현될 정도로 회사를 위해서는 몸을 던지는 유형이다. 11월 30일 한국에 와서도 혼자서 전 세계 50여 개국에서 모인 고객 등을 상대로 10시간 동안 쉴 새 없이 프레젠테이션을 할 정도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