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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섬유 첨단기술 기업에 이전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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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이재락 박사가 자신이 개발한 탄소섬유의 특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실 형태로 탄소섬유를 뽑아내는 데 처음 성공했다.


한국화학연구원의 이재락(57·사진) 박사는 1980년대 중반 일본 신문에 난 칼럼을 읽다가 오기가 발동했다. 최첨단 정밀소재 기술이 필요한 탄소섬유는 한국에선 도저히 개발할 수 없을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1981~85년 프랑스 콩피엔기술공과대에서 박사과정을 하면서 탄소섬유로 제작한 항공기 동체의 물성 평가 연구를 하던 터였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이 박사는 새로운 나노 탄소섬유 제조기술을 개발해 냈다. 그 원료물질에서부터 제조기계와 공정에 이르기까지 원천기술을 두루 개발한 것이다. 탄소섬유를 프랑스에서 만진 것부터 치면 30년 만에 탄소섬유 분야의 새로운 일가를 이룬 셈이다. 그의 기술은 탄소섬유뿐 아니라 다양한 나노섬유에 적용할 수 있다.

실타래에 감겨 있는 탄소섬유.

 그의 30년 노력의 정수인 ‘나노 탄소섬유와 나노섬유 신기술’의 기업이전 설명회가 한국화학연구원 주최로 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다. 일본이 장악한 세계 고부가가치 탄소섬유와 나노섬유 시장을 뚫고 들어갈 계기를 만들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은 올 한 해 약 48억 달러(약 5조5000억원)에 달하는 세계 탄소섬유 시장의 70~80%를 차지할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탄소섬유는 강철보다 강도가 높지만 무게는 5분의 1에 불과해 ‘꿈의 신소재’로 불린다. 한국에서 처음 쏘아 올리다 연속 실패한 우주로켓 ‘나로호’에 실었던 위성 보호 덮개도 탄소섬유로 만들었다. 탄소섬유는 항공기의 날개, 노트북 외장틀 등 다양한 분야의 무게를 더는 용도로 활용된다. 향후 전기자동차 차체로도 유망한 소재다. 그러나 탄소 섬유의 기능과 경제성을 더욱 높이는 것이 큰 과제였다.

사람의 머리카락 위에 올린 탄소섬유.

 이 박사의 탄소섬유 제조기술은 종전보다 간단한 공정으로 직조에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길고, 가는 실 형태로 섬유를 뽑아낼 수 있다. 외국에서 생산하는 탄소섬유는 솜처럼 뭉쳐 있거나, 부직포 형태로밖에 만들지 못했다. 즉 외국 기술은 실이 엉클어져 뭉쳐 있는 형태라 두루 활용하기에 한계가 있다. 그가 개발한 나노섬유는 원료물질을 통에 넣은 뒤 전압을 가하면서 아주 작은 구멍으로 흘리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그러면 가느다란 실 형태의 탄소섬유가 계속 나온다. 실이 나오는 구멍 수를 늘리면 한꺼번에 수십 가닥이라도 생산할 수 있다. 이 분야에서는 가장 앞선 기술로 평가된다.

 그의 연구실에는 탄소섬유를 어떤 모양으로 성형할 때 꼭 필요한 차세대 매트릭스 수지용 경화제도 개발돼 있다. 이 역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다. 경화제 공정을 보자. 탄소섬유로 비행기 날개를 만든다고 하자. 우선 비행기 날개 형태의 거푸집에 탄소섬유를 꽉 눌러 채운 뒤 경화제를 섞은 에폭시 같은 액체를 부어 탄소섬유의 빈틈으로 흘러 들어가게 한다. 그런 뒤 전자빔과 열을 동시에 가해 굳히면 단단한 비행기 날개가 만들어진다.

 이 경화제는 한때 곤경에 처한 대한항공을 구하기도 했다. 2000년 에어버스에 밀리기 시작한 미국 보잉은 대한항공 등 글로벌 협력업체에 일제히 공문을 보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이 없는 협력업체와는 거래를 끊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그런 기술이 없던 대한항공은 난감했다. 이 박사의 경화제가 그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대한항공은 이 박사의 경화제 관련 기술을 보잉에 보내 장기 부품공급 계약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박사는 “세계 탄소섬유와 나노섬유 시장은 연평균 10% 이상 급성장하는데 이제 일본의 독주를 막을 만한 기술이 나온 것 같다”며 “이 소재의 상용화는 정부가 지원할 만한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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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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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

[現] 한국화학연구원 에너지소재연구센터 센터장

19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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