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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이야기] 오른쪽 뇌를 자극해 물건을 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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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TV 홈쇼핑을 시청하면 화면에 L자 모양의 띠가 둘러진 것이 보인다. 화면 왼쪽의 상하로 된 띠엔 가격과 상품정보가 나오며, 아래에 좌우로 그어진 띠에는 주문전화 번호가 있다. 소비자가 가격과 상품 정보를 왼쪽에서 읽고 난 뒤 시선을 자연스럽게 오른쪽 상품으로 옮기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교묘한 노림수가 숨어있다. 바로 소비자에게 무의식적인 영향을 줘 구매 욕구를 높이려는 것이다.

얘기는 이렇다. 눈에 보이는 띠를 왼쪽에 두면 시선이 먼저 간다. 그러면 왼쪽 시신경과 연결된 오른쪽 뇌의 감성 기능을 자극한다. 왼쪽 뇌는 합리적인 사고 판단 능력을, 오른쪽 뇌는 감정과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용인정신병원 신경정신과 하지현 과장은 "보통 양쪽 뇌가 서로 상호 작용을 통해 최종 판단을 내린다"면서도 "어느 쪽에 먼저 정보가 전달되고 메시지가 강조되느냐에 따라 구매 욕구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유통업계에선 이런 점을 이용한 장치가 많다. TV 홈쇼핑에선 프로그램 진행자인 쇼호스트는 화면의 왼쪽에, 상품을 설명하는 전문가인 게스트는 화면의 오른쪽에 서 있다. 할인점에선 싼 상품을 매대의 가장 왼쪽에 둔다. 시선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게 만들기 위해서 눈에 띄는 상품을 왼쪽에 진열하는 것이다.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선 에스컬레이터 왼쪽 자리가 명당이다. 내년에 문을 여는 서울 동대문의 패션몰 '패션TV'는 지하철과의 연결 통로인 무빙워크를 왼쪽으로 살짝 틀어서 자연스럽게 고객이 왼쪽 매장부터 둘러보도록 설계할 예정이다.

GS홈쇼핑은 왼쪽 뇌의 기능을 활용해 재미를 보고 있다. 화면의 왼쪽에 있던 가격과 상품정보를 오른쪽으로 옮겼다.

기존 좌→우로 이동하던 카메라 움직임도 우→좌로 바꿨다. 이성적인 왼쪽 뇌에 시각 정보를 먼저 주면서 소비자의 충동 구매를 줄이자는 것이다. 언뜻 보면 고객의 구매 욕구를 줄이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TV 홈쇼핑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반품률이 훨씬 줄었다는 게 GS홈쇼핑 측의 설명이다. 실제로 평균 25%였던 반품률이 요즘 10%대로 떨어졌다.

GS홈쇼핑 관계자는 "화면 시선을 옮긴 이유만으로 반품률이 확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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