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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실직자에게 줄 돈을 모성보호급여로 쓴다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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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육아휴직급여와 산전·후(産前·後)휴가급여 등 모성(母性)보호급여가 지난달 24일부터 잠시 중단됐다고 한다. 육아휴직급여 신청자가 예상했던 것보다 급증했기 때문이라는 게 정부 해명이다. 예산상 잡혀 있던 올해 모성보호급여액은 3360억원. 하지만 신청 비율이 지난해 50.2%에서 올해 57%로 크게 늘면서 실제로 지급되는 급여액도 3600억~3700억원 정도로 늘어났고, 이 때문에 예산이 진작 바닥났다는 것이다. 당초 3주 정도 지급이 늦춰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정부가 서둘러 다른 데 쓸 돈을 전용(轉用)해 오면서 어제부터 지급을 재개한 건 그나마 다행이다.

 사태는 서둘러 봉합됐지만 모성보호급여를 둘러싼 문제가 해소된 건 아니다. 우선 예측의 정확성 문제다. 신청자가 갑자기 늘어나 정부로서도 정확하게 예측하긴 어려웠을 것으로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그렇더라도 12월도 아닌, 11월에 바닥난 건 문제다. 그런 예측은 하나 마나라는 질책을 면키 어렵다. 서민에게는 월 50만원의 육아휴직급여도 큰돈이라는 점을 감안했다면 좀 더 예측에 신경 썼어야 했다.

 더 큰 문제는 모성보호급여의 재원이 대부분 고용보험기금이라는 점이다. 이 기금의 설립 목적은 실직자들의 최소생계대책 마련이다. 실직했을 경우 일정 기간 동안 실업급여를 줌으로써 최소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든 기금이다. 근로자와 사용자가 매달 월급에서 일정 부분을 떼내 적립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모성보호급여는 저출산대책이다. 실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고용보험기금이 떠맡는 건 문제다. 가뜩이나 고용보험기금에 대한 우려가 많은 터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고용보험기금이 지금처럼 운용되면 3년 뒤 바닥난다고 전망한다. 또 모성보호급여는 앞으로 더욱 급증할 것이다. 보육을 나라가 책임지겠다면서 내년부터 육아휴직급여를 현행 50만원에서 최대 100만원으로 늘렸기 때문이다. 고용보험기금의 고갈은 더 빨라질 게 자명하다. 저출산대책에 드는 돈을 고용보험기금에서 빼내 쓰는 건 편법이다. 모성보호급여는 정부 예산으로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