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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위키리크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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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첨단 정보화시대 한국의 힘은 아마도 ‘빨리빨리’일 것이다. 광속도로 변하는 시대에 ‘만만디’는 곤란하다. 이 ‘빨리빨리’가 하와이 말로 ‘위키 위키(Wiki Wiki)’다. 영국이 자랑하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덮게 한 위키피디아, 현재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위키리크스의 ‘위키’가 여기서 나왔다.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 곧 집단지성이 빠르고 효율적이란 의미다.

 위키리크스(WikiLeaks)는 말 그대로 ‘집단지성을 통한 누설(漏泄)’을 뜻한다. 호주 출신의 줄리안 어산지가 2006년 12월 처음 시작했다. 정부의 기밀문서를 공개하는 것이 목표다. 미국이 베트남전 확대를 위해 ‘통킹만 사건’을 조작했다는 내용의 ‘펜타곤 페이퍼’를 내부고발자 대니얼 엘스버그가 뉴욕 타임스에 제보한 것이 이 프로젝트의 맹아(萌芽)라고 한다. 당시 미국 정부는 국가기밀 누설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연방 대법원은 “헌법이 언론자유를 보장한 것은 정부의 비밀을 파헤쳐 국민에게 알리도록 하기 위해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런데 이번에 미국 외교문서가 무차별 공개되면서 당사자들이 곤혹스러운 눈치다. 마치 은밀한 편지나 일기가 공개된 형국이다. 외교관들의 스파이 행위와 세계 지도자들에 대한 이런저런 평가가 ‘마사지’ 없이 생생하게 드러난 것이다. 이탈리아 프랑코 프라티니 외무장관이 “외교가의 9·11테러”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미국은 간첩죄를 들먹이며 관계자에게 사과하는 등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덮으려 할수록 호기심은 커지는 법. 바로 ‘스트라이샌드 효과’다. 사진사이트 픽토피아닷컴이 2003년 미국 캘리포니아 해안 사진 1만2000점을 공개했는데, 항공사진 하나가 문제가 됐다. ‘메모리’와 ‘에버그린’으로 유명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저택이 드러난 것이다. 그녀는 사생활 침해를 내세워 삭제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오히려 소송으로 더욱 유명세를 타 해당 인터넷사이트에 42만 명이 방문했다. 조용히 감추려다 동네방네 소문난 격이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다고 한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너도 알고, 나도 아는 것이다. 그래도 비밀은 진실이 입은 옷일까. 아담과 이브도 선악(善惡)을 알고 나서 곧바로 나뭇잎으로 남녀의 차이를 가렸다. 가린다고 진실이 사라지지 않겠지만, 보여지는 무대에선 역설적으로 커튼의 역할이 큰 법이다.

박종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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