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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안목 없으면 큰 사업 이끌 수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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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구평회(84·사진) E1 명예회장은 재계의 원로다. 구 회장과 그의 형제들은 LG라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을 일군 창업세대다. 락희화학(현 LG화학), 금성사(현 LG전자), 호남정유(현 GS칼텍스), 럭키금성상사(현 LG상사) 등을 손수 키웠다. 민간 외교활동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한·미경제협의회장, 한·미재계회의 한국위원장, 한·미협회장 등을 지냈다. 그래서 ‘재계의 민간 외교관’으로 불린다.

 구 회장은 지난달 30일 한·미관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한·미협회(회장 한승주)가 수여하는 ‘한·미 우호상’을 받았다. 수상에 앞서 지난달 22일 서울 삼성동 아셈타워 14층 집무실에서 구 회장을 만났다.

 집무실 한쪽에 자리 잡은 커다란 지구본을 가리키며 구 회장은 “예전부터 저걸 바라보는 게 재미있어 늘 옆에 둔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미국과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후배 기업인들은 수출로 먹고살아야 하는 우리의 처지를 염두에 두고, 늘 세계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미 우호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요새 한·미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1960년대 미국과 합작회사(호남정유)를 세울 때 ‘미군 한 개 사단을 데리고 온 만큼의 효과가 있다’는 평가를 받은 기억이 납니다. 정부는 냉철하게 국익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민간은 우정을 나누며 정부를 도울 수 있습니다. 이 둘이 합쳐져 국가적 외교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국제관계는 항상 넓게 생각해야 합니다. 한·미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현안이 있고, 서로 시각차가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지만 세계 질서의 틀 안에서 풀어야 합니다. 우리 입장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한·미 관계를 고정 축으로 놓고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봐야 합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자동차·쇠고기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국민 감정을 고려하면 수정은 어려운 것이고, 미국도 국내 정치가 걸려 있으니 (양보가) 쉽지 않습니다. FTA는 단순한 무역협정이 아니라 정치·경제·안보·문화가 복합적으로 연결된 사안입니다. 하지만 본질은 거래이고 약속입니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시작한 일이니 대세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양보와 타협을 하면서 마무리 지어야 합니다. 전체적인 이익균형의 관점에서 접근해야지 특정 사안을 두고 유·불리를 논하면 진전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가 코엑스에서 열렸습니다. 남덕우 전 총리의 회고록 『경제개발의 길목에서』를 보면 ‘코엑스가 만들어진 것은 구 회장의 국제적인 안목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무역협회장(1994~99) 재임 당시 코엑스 확장에 3조~4조원이 들었습니다. 무리한 사업이라는 비난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지식산업인 컨벤션 사업의 전기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에 밀어붙였습니다. 이후 부산·대구 등 지방에도 코엑스를 모델로 하는 시설이 만들어졌고, 이번에 G20 회의가 열리는 영광도 얻게 되었습니다.”

 -요즘 기업인은 한강의 기적을 이끈 창업세대에 비해 기업가 정신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을 때 뭔가를 만들었으니 이병철 회장이나 정주영 회장 같은 분이 신화로 남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창업세대의 그런 창조가 아니고, 국제적 시각에서 사업을 해야 할 것입니다. 중국어도 해야 하고 영어·일어도 잘해야 하고요. 국제적 안목이 없으면 큰 사업을 이끌기 어려울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스테이츠먼십(statesmanship: 경험 많고 존경받는 정치가의 정신과 행동)을 가져야 합니다. 기업만 보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폭넓게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현 경제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위험한 상황은 벗어났고, 더블딥 가능성도 크지 않다고 봅니다. 내년에도 우리 경제가 안정적인 성장을 유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정치에서 ‘풀뿌리 민주주의’가 중요하듯, 경제에서도 ‘풀뿌리 경제’가 중요합니다. 성장의 혜택을 모두가 고루 받는 게 아니어서 걱정입니다.”

만난 사람=고현곤 산업데스크
정리=염태정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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