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 일본으로 … 태평양 건너오는 LPGA 그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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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일미 LPGA → KLPGA, 강수연 LPGA → JLPGA, 박희정 LPGA → KLPGA(왼쪽부터)


미국 LPGA 투어에서 활약하는 한국 선수들의 엑소더스 바람이 불고 있다.

 LPGA 투어에서 선수 이사를 맡기도 했던 터줏대감 정일미(38)를 비롯, 박희정(30)·이정연(31)·송아리(24) 등은 KLPGA 투어 시드전에 응시, 내년부터 국내 무대에서 뛰게 됐다. 정일미는 “일본 투어로 갈 수도 있지만 또다시 새로운 투어에서 적응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국내 투어로 유턴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역시 미국 투어에서 뛰던 이미나(29)와 강수연(34)은 일본 여자 투어 Q스쿨 최종전에 올라 있다. 이미나는 박인비(22)처럼 미국과 일본 투어를 겸하게 된다. 박인비는 미국 투어가 주무대지만 대회가 없는 틈틈이 일본 투어에 나가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일종의 아르바이트지만 일본에서 버는 상금이 더 많을 경우 주무대를 바꿀 수도 있다.

 ▶왜 미국을 떠나나=미국 투어는 이동거리가 길어 힘들고 경비가 많이 든다. 과거 한국선수 대부분은 기업의 후원을 받아 경비를 충당했고, 다른 투어보다 월등히 많은 상금을 고스란히 수익으로 올릴 수 있었다. 그런데 너도나도 미국 투어로 진출하면서 희소성이 사라졌고 따라서 스폰서 구하기도 쉽지 않다. 또 투어 인기가 식으면서 대회 수와 상금액이 줄어들어 수지를 맞추기가 어려워졌다. LPGA 투어에서 뛰는 이지영(25)은 “돌봐주는 사람과 다니려면 적어도 1년에 상금으로 30만 달러 이상을 벌어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는데 꾸준히 상위권 성적을 거둬야 달성이 가능한 상금액”이라며 “어린 선수들은 부모님에게 의지할 수도 있지만 20대 중반이 넘는 선수가 계속 집에 손을 벌리기는 쉽지 않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장기적으로 LPGA 투어에는 10여 명의 정예만 남고 나머지는 한국이나 일본으로 무대를 옮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올해는 40명 정도의 한국 선수가 LPGA 투어에서 뛰었고 내년엔 30명 선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긴장하는 일본투어=반면 일본투어는 한국 선수들이 대거 몰려오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다. 한국 선수들이 너무 많아 LPGA 인기가 떨어졌는데 일본도 비슷한 상황에 처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눈치다. 그래도 미국 선수들은 한국 선수를 ‘돈만 벌어가는 선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이 2개의 대회(KIA 클래식과 하나은행 챔피언십)를 개최하고 중계권도 구입하는 등 나름대로 LPGA에 기여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한때 영어 시험 부과 등 진입장벽을 만들려 시도하기도 했지만 세계 여론에 밀려 철회되는 바람에 한국 선수들이 피해를 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일본은 다르다. 정서상 한국 기업이 일본 투어에 대회를 만들기도 어렵고, 한국 선수들이 대거 진출할 경우 경기력 면에서 상위권을 휩쓸 것이 뻔해 ‘안티’ 바람이 불 수도 있다.

 한편 그동안 국내 투어는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이 주도했는데 미국에서 돌아온 경험 많은 30대 선수들이 연령의 균형을 맞춰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KLPGA의 최고 선수들이 해외 투어로 떠나려는 현상은 여전하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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