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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은 메이저 골프 우승과도 못 바꿀 매력 덩어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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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호 14면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2관왕에 오른 김민휘가 환호하고 있다. 병역을 면제받는 남자 선수들은 금메달의 가치가 수십억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오른쪽 사진은 금메달 2개를 딴 한국 여자 선수들. [AFP=연합]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종합대회와 골프는 인연이 깊지는 않다. 처음으로 골프가 올림픽 종목이 된 1904년 세인트루이스에선 골프 경기가 그럭저럭 치러졌는데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선 말썽이 많았다. 골프의 본거지라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발단은 이렇다. 브리티시 올림픽 위원회는 주요 골프 관련 단체에 올림픽에 관한 협조 공문을 보냈다. 그러나 골프 룰 등을 관장하는 가장 중요한 단체인 R&A는 이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두 단체는 공문 발송 여부를 놓고 충돌했는데 사실 그건 별 문제는 아니었다. 우체국이 문제일 수도 있는 일이다.

아시안게임 2연속 싹쓸이한 한국 골프

진짜 문제는 어떻게 올림픽 골프를 열 것인지에 대한 것이었다. R&A는 무관심했다. 올림픽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했으며 주도권을 다른 단체가 가지고 있는 것도 불편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자 올림픽 위원회는 사흘간 36홀씩 스트로크 경기로 대회를 치르겠다고 독자적으로 발표했다. 개인의 성적으로 개인전 우승자를 가리고 팀 이벤트는 선수의 타수를 합산해서 내리기로 했다. 각국은 한 팀에 6명씩을 출전시키고 그중 성적이 좋은 4명의 스코어만 발췌하는 방식을 쓰기로 했다. 또 영국(United Kingdom)의 4개 나라(잉글랜드·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가 모두 출전할 수 있도록 각국은 최대 4개 팀씩을 내보낼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대해 말이 많았다. “대회 직전에 열리는 아마추어 챔피언십 우승자를 그냥 올림픽 우승자로 하지 왜 귀찮게 두 번씩 대회를 치르느냐” “굳이 하려면 일정을 조절해 좀 짧게 하지 그러느냐” “골프가 제대로 보급도 되지 않은 벨기에가 4팀을 내보낼 수 있는데 골프 종주국인 스코틀랜드는 한 팀만 출전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등 불만이 쏟아졌다. 올림픽에서 메달 사냥을 하는 것은 골프의 아마추어 정신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었고, 고대 그리스 올림픽 당시엔 있지도 않던 골프를 왜 올림픽에 넣느냐는 주장도 나왔다. 하도 시끄러워 영국의 더 타임스는 “올림픽 골프는 완전한 실패이거나 적어도 부분적인 실패”라고 지적했다.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 비해 런던 올림픽 참가 선수는 3배(약 2000명)로 늘었는데 골프 출전 선수는 31명이 줄어 단 한 명에 불과했다. 브리티시 올림픽 위원회는 “많은 골퍼가 신청했는데 신청서에 부족한 부분이 있어 돌려보냈더니 정해진 시간까지 다시 돌아오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주장했다. 신청 양식을 제대로 채운 선수는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골프 금메달리스트인 조지 리온(캐나다)뿐이었다. 리온은 경기를 하지 않고도 대회 우승컵을 지킬 수 있었지만 “그런 건 의미가 없다”며 금메달을 거절했다. 1908년 올림픽에선 단 하나의 스트로크도 없었고 이후 올림픽에서 골프는 사라졌다.

김경태

골프는 대중 스포츠가 아니었고 이를 즐기는 귀족들은 올림픽 종목이 되는데 적극적이지 않았다. 월드컵이라는 거대한 이벤트를 가진 축구가 올림픽에 최고의 선수를 내보내지 않듯 메이저 골프대회를 조직하는 단체들은 올림픽에 최고 골프 대회라는 영광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시안게임에 골프가 도입된 건 82년 인도 뉴델리 대회다. 인도는 영국 이외에 처음으로 골프장이 생긴 나라다. 미국보다 골프 역사가 길다. 그래서 골프로 메달을 딸 수 있다고 판단해 정식종목으로 채택했다. 첫 대회여서인지 당시 아시아 골프 최강국인 일본은 최고 선수를 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은 강했다. 한국 대표팀의 주류는 재일동포였고 그들이 인도와 금메달을 다퉜다. 당시 재일동포들이 각종 세계 아마추어대회에 개인 돈을 내서 태극마크를 달고 나가던 때였다. 한국팀의 에이스는 82년 매경오픈에서 아마추어로 우승한 김주헌(당시 21세)이었는데 일본에 살아 한국말을 못했다. 역시 재일동포인 43세의 김기섭이 개인전 5위로 한국팀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한국은 개최국인 인도에 이어 은메달을 땄다. 한국 선수 4명 중 유일하게 국내에 거주한 김병훈은 “주최국인 인도의 경기 위원이 한국에 벌타 4점을 주는 바람에 인도가 금메달을 따고 한국이 은메달이 됐다”고 말했다.

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첫 금메달을 땄다. 한국은 당시 서울 아시안게임에 모든 것을 걸던 때여서 골프 선수들도 합숙을 하면서 강훈련을 했다. 한국은 단체 금, 개인 은메달을 땄다. 그러나 한국 선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낸 선수는 역시 재일동포인 김기섭이었다. 상대팀들은 “홈 코스 어드밴티지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90년 베이징 대회부터 여자 골프도 포함됐다. 한국 여자는 첫 대회부터 강력한 국제 경쟁력을 발휘했다. 남자는 동메달 하나에 그쳤는데 여자는 금 2개와 은 1개를 딴 것이다. 여자 개인과 단체에서 2관왕이 된 원재숙은 당시 일본에 유학 중이었고 이후 일본에서 프로로 전향해 7승을 거뒀다. 94년 히로시마 대표팀엔 바둑 해설가인 고 김수영씨의 아들이자 탤런트 이경심씨의 남편인 김창민, 허석호, 강수연, 한희원 등이 나가 은 2, 동 2개를 땄다. 98년 방콕 대회엔 남자부에서 골프 천재로 이름을 높이던 김대섭과 김성윤이 나가 메달을 따지 못했고 여자부에선 장정과 김주연 등이 은 1, 동 1개를 목에 걸었다. 2002년 대표팀엔 성시우, 김병관, 김주미, 임성아 등이 포함됐다. 여자는 단체 금을 땄지만 남자는 대만을 잡지 못했다. 여자 개인전 금메달은 미야자토 아이였다.

2006년 도하 대회 남자부에서 한국은 김경태, 강성훈과 동명이인 김도훈 두 명, 여자부에서는 유소연, 최혜용, 정재은이 금메달 4개를 휩쓸었다. 2010년 광저우에서도 김민휘, 박일환, 이경훈, 이재혁, 김현수, 김지희, 한정은이 금을 싹쓸이했다.

1904년 영국에서 그랬듯 골프는 종합대회에 심드렁하다. 아시안게임 골프는 출전 선수 층이 두텁지 않다. 첫 대회에서 여자는 모두 5개국에서 20명이 참가했고 16년이 지난 2006년에도 6개국 18명에 불과했다. 한 라운드에서 130타를 치는 선수도 심심찮게 나온다. 남자는 평균 12개국에서 50명 선의 출전 선수가 나오는데 일본은 탈아시아를 외쳐서인지 최근엔 에이스가 나오지 않는다. 일본 투어에서 뛰는 김종덕 프로는 “최고 아마추어들이 일본 내의 권위 있는 대회나 프로의 오픈 경기에 참가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과 대만의 남자 선수들은 아시안게임을 매우 중시한다.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하면 병역이 면제되기 때문이다. 다른 종목과도 또 다르다. 축구, 야구, 농구 등 다른 종목에선 아시안게임에 프로 선수가 나갈 수 있지만 골프만은 아마추어 선수만 나갈 수 있다. 프로 선수들은 “다른 종목은 다 되는데 왜 골프만 프로 선수가 참가할 수 없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프로 선수가 되려 하는 주니어 아마추어 선수에겐 대단한 기회다. 골프 선수들은 병역 면제가 2년이 아니라 전역 후 경기 감각을 다시 찾는 2년을 포함해 4년의 시간과 돈을 버는 것으로 본다. 국가대표를 지낸 1급 선수의 경우 상금과 스폰서로 1년에 10억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 그래서 한국의 주니어 남자 선수들에게 아시안게임은 메이저 중의 메이저 대회다. 올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이경훈은 “오직 아시안게임만을 위해 지난 4년을 바쳤다. 정연진, 한창원 등 또래 동료들이 나간 다른 대회는 디 오픈이든 마스터스든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아시안게임에 나가려 프로 전향을 늦추는 경우도 흔하다. 김경태는 2006년 프로 전향을 미루고 도하 아시안게임에 나가서 2관왕에 올랐다. 올해 그의 상금은 30억원에 육박한다. 군대에 있었다면 이 기회를 살리지 못했을 것이다. 반대로 김대섭은 홈인 부산에서 열려 금메달이 유력했던 2002년 대회 참가를 앞두고 2001년 프로로 전향했다. 그는 프로 생활 내내 이를 후회하다가 지난 16일 군에 입대했다.

골프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참가한다. 이런 상상은 어떨까?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중국 여자 탁구 선수들이 여러 나라에 귀화해 그 나라 국기를 달고 출전하듯이 LPGA 투어에서 뛰는 한국 선수들이 싱가포르·브라질·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인도 유니폼을 입고 올림픽에 출전한다면? 한국 여자 골프가 워낙 강하기에 해봄직한 상상이다. 실현될 가능성은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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