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비자 보호, 금융회사가 가장 먼저 나서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94호 24면

밴쿠버는 산이 많아 숲으로 둘러싸인 전원주택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잔디 돌보는 일이며 정원 가꾸는 일이 힘들다 보니 전문 조경업체가 이를 관리하기도 한다. 어느 날 정원사가 “주변에 있는 잡초성 나무의 성장 속도가 너무 빨라 방치하면 전망을 망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치자. 그린벨트 내 수목이라도 문제될 게 없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인다. 결정적으로 이전 주인 또한 해마다 겨울철이 되면 나무를 잘랐으며, 이번에는 말라 버린 큰 나무 몇 그루까지 처리해 주겠단다. 이 정도 되면 서비스를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문가의 조언이라도 꼼꼼히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김우진의 캐나다 통신

금융소비자로서 우리는 시시각각 금융 거래를 하고 있다. 그런데 금융회사를 전적으로 믿고 서비스 받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경험으로 안다. 확정 금리인 줄 알았던 저축성 보험 상품이 만기에 알고 보니 이자가 한 푼도 붙지 않았다거나, 원금보장형이려니 생각하고 가입했던 펀드 상품이 손실이 50%라는 말에 기겁하기도 한다. 불완전판매는 금융지식이 많은 소비자도 흔히 당할 수 있다. 죽은 나무를 덤으로 잘라 주겠다는 제안은 묶어 팔기(bundling)와 유사한 형태다. 여러 상품을 묶어 팔 때는 필요 없는 상품이 있기 마련이다. 묶어 파는 상품을 따로 구매하고자 하면 가격 페널티가 있다. 당연히 합리적인 구매가 어렵게 된다.

이 대목에서 감독 당국이 그 존재가치를 지닌다. 금융소비자가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상품이 제대로 설계돼 있는지, 가격 결정 구조가 합리적인지 등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시장을 경쟁적으로 만들어 주고, 금융 정보에 대한 접근이 용이하도록 공시(disclosure)를 강화해야 한다. 시장 참여자 모두가 유인부합적(incentive compatible)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면 파레토 최적(Pareto optimum)이 된다. 이 또한 감독 당국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회사의 상생경영 의지가 소비자 보호에 가장 효과적이다. 이는 금융회사가 문제 해결의 칼자루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제작한 사람도 이해하기 어려운 금융 상품이 버젓이 팔리는 세상이다. 감독 당국이 아무리 정교하게 제도를 설계한다고 해도 금융회사는 빠져나갈 구멍(loophole)을 만들 수 있다. 그 많은 변호사가 왜 월스트리트의 금융회사 문턱을 수시로 드나들겠는가. 1990년대 미국에서는 은행 또는 은행지주회사가 증권·보험 영업을 하는 데 제약이 많았다. 30년대 만들어졌던 금융겸업금지법(Glass Stiegel Act)이 여전히 유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98년 4월 6일, 당시 세계 최대의 금융그룹이었던 씨티는 트레블러스와 합병을 발표했다. 은행에 기반을 둔 정통 금융그룹이 보험사와 합쳐져 공룡이 탄생됐다. 마치 감독 당국을 우롱하듯이 말이다. 기존 법망을 우회할 수 있는 길은 많다. 그만큼 소비자 보호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