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언론탄압 실상을 밝힌다] 3. 인사압력 사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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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장악을 위한 권력의 시도는 '위험인물 제거''내 사람 심기'로 구체화 됐다.'열번 부탁하느니 골치 안아픈 사람을 아예 그 자리에서 밀어내는 게 최고'라는 식의 접근은 권력에게는 상책일런지 몰라도 언론에는 치명적 결과를 낳는다.

어쨌든 권력의 표적이 된 중앙일보의 경우는 1월4일 있은 전격인사 '사태'로 인해 또하나의 미운털이 박혔다.요구의 일부를 수용한 듯한 인사흔적으로 얼버무릴 게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권력이 불만스러워 하고 괘씸해 한 전격인사였지만 몇몇 간부의 '방출'내지 '기용'은 중앙일보 내부에는 아프고 부끄러운 상처로 아직껏 남아있다.

돌연 미주총국장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던 문창극 부국장과 일본총국장으로 떠난 이장규 부국장의 경우도 그런 자국이다.이뿐이 아니다.창졸간에 '유배아닌 유배'를 떠나야 했던 두 사람외에도 어느 차장급 기자는 '글을 못쓰는 자리',즉 편집국 바깥으로 인사조치됐다.

금년 1월4일과 같은 제작진 전반에 관한 인사는 아니라도 권력과의 마찰이 문제가 돼 내부에 갈등을 더한 평기자의 경우도 있었다.98년4월18일 '수석들에게 大怒한 DJ'라는 취재일기를 쓴 당시 청와대출입기자에 대해 박지원 수석은 강력히 불만을 토로했다.이 기자는 그해 8월 미국으로 연수를 떠났다.

그러나 단일 케이스로 언론계와 정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사건'은 역시 전육(全堉)
편집국장 경우다. 97년 12월18일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된 직후부터 언론계에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대선과정에서 김대중 후보에게 비판적이었던 일부 언론사 고위간부들이 자리를 보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와 함께 구체적인 이름까지 거명됐다.

중앙일보 全국장도 그 중 하나였다.국장자리에서 물러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중앙일보밖으로 쫓겨날 것이는 소문이 점차 확산됐다. 全국장은 홍석현 사장을 찾아가 '언제든지 물러날 각오'를 밝혔다.이에 洪사장이 화를 냈다.소문에 흔들리지 말라는 격려도 있었다.내친 김에 全국장은 분위기 쇄신과 우수지면 제작을 위한 인사를 건의했다.

언론계를 떠도는 소문을 일거에 불식시킬 수 있는 내용의 인사안을 준비,대선 1주일뒤인 12월24일 전격발표했다. 정권을 잡은 권력핵심부가 발칵했다는 후문이 들려왔다.그로부터 다시 1주일여가 지난 98년 1월초.여권 고위관계자가 중앙일보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채널을 통해 메시지를 보냈다.

'全국장만이 아니라 洪사장까지 중앙일보로부터 완전히 손을 떼도록 하라'는 내용이었다. 이 압력은 중간에서 차단됐지만 이후에도 중앙일보에 대한 직간접의 인사압력은 강도를 더해갔다.결국 중앙일보는 최소한의 조치를 취하지않을 수 없다는 상황판단을 하기에 이르렀다.

1월 중순경 洪사장은 저녁자리로 全국장을 불렀다.한참 동안 술잔을 나눈 끝에 洪사장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회사가 처한 어려운 사정과 그간의 고민을 설명했다.

全국장은 "그렇다면 내가 물러나겠다"며 사의를 밝혔다.洪사장은 그제서야 사의를 받아들이면서 대신 "불명예스럽지 않게 물러나야한다"고 강조했다.며칠뒤인 1월19일 全국장은 수석논설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이와함께 일부 간부들도 자리를 옮겼다.

全국장의 후임 편집국장 인선에 대해서도 대통령 당선자측의 요구가 있었다.그러나 洪사장은 이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당시 워싱턴에 있던 한남규(韓南圭)
미주총국장을 새 편집국장에 임명했다.

중앙일보가 굴욕을 무릅쓰고 취한 이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권력측의 요구는 집요했다.수석논설위원으로 옮겨간 全 전국장을 아예 "중앙일보를 완전히 떠나게하거나 최소한 글을 쓰지 않는 자리로 보내라"는 박지원 수석등의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대선 당시 김대중후보의 언론특보를 맡고 있던 박지원 수석은 중앙일보 편집국 안에서 지면제작및 보도태도와 관련해 전육 편집국장과 큰 소리로 언쟁을 벌이는등의 악연이 있었다.

또 다시 부끄러운 인사를 해야만했던 洪사장은 다른 간부를 통해 全 전국장에게 회사의 입장을 설명했다. 이 간부는 全 전국장에게 신문제작과 무관한 판매담당 자리를 제안했다.全 전국장은 이를 거부했다. 결국 全 전국장이 회사를 사직하고 유학을 떠나는 것으로 결론났다.중앙일보에 적(籍)
을 두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다.全 전국장은 현재 미 스탠포드대 후버 연구소에서 남북관계와 동북아정세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시일이 흐른 지금에서도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곤욕을 치르고 치룬 중앙일보였음에도 권력핵심은 항상 부족하다는 태도였다.

'1·4사태'를 비롯,수많은 권력의 인사압력을 경험한 洪사장은 금년 6월 정기인사를 단행하면서 극도의 보안을 유지했다.그는 6월12일 해외출장을 떠나앞서 비밀리에 인사안을 마련했다가 귀국 사흘뒤인 22일 인사안을 공표했다.

그 결과는 국민들이 주지하 듯 보광에 대한 세무조사와 洪사장 본인의 구속으로 나타났다. 洪사장이 구속되기 직전인 지난 1일 중앙일보 노조는 회사측에 긴급 단체협상을 제안,'편집국장 임명동의제'라는 제도 도입을 요구했다.

이는 회사측이 새 편집국장을 임명하려고 할 경우 국장후보를 미리 공표,편집국 기자들의 무기명 찬반투표를 거쳐 임명동의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편집국장은 편집국내의 인사에 대한 권한을 갖고,기자들을 지휘하며 기사의 크기와 면의 배정등을 책임지는, 제작 총책임자다.여기에는 권력의 인사외압을 회사측이 어쩔 수 없이 수용하려고 하더라도 기자들이 총의를 모아 이를 막아내겠다는 의지가 '편집국장 임명동의제'로 구체화됐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이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정권의 인사개입을 용인치않겠다"는 일종의 배수진인 셈이다. 중앙일보 경영진은 洪사장이 구속된 상태에서 인사개입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노조의 주장을 받아들였다.구속중인 洪사장의 인신문제를 볼모로 정권의 요구가 있을 경우 이를 딱 잘라 거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구차하지만 불가피한 인식의 공유가 바탕에 깔려있음은 물론이다.

상황을 이쯤에 이르도록 해놓고도 '언론 길들이기가 아니다.정부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는 제의를 중앙일보가 해왔다'는 식의 얘기를 하는 박준영 청와대공보수석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권력의 노림수가 뭔지,한국의 언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걱정하지 않을수 없는 것이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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