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머나먼 서해 5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정기환
경기·인천 취재팀장

연평·소연평도와 대청·소청도 및 백령도는 서해 5도로 불린다. 인천에서는 150∼200㎞나 떨어져 있지만 북한 황해도 해안과는 십수㎞ 거리에 있다. 접경지역에 대한 지원도 있지만 군사상의 이유 등으로 툭하면 어로활동이 통제된다. 고립감과 불안감도 이들 섬 주민들의 공통점이다.

 연평도 어장은 예로부터 황금어장으로 꼽혀 왔다. 1970년대 초 히트했던 조미미의 ‘눈물의 연평도’도 조기잡이를 나갔다가 태풍에 휩쓸려 간 임을 그리는 섬 여인의 한을 담은 노래다. ‘조기를 듬뿍 잡아 기폭을 달고…’로 시작돼 ‘갈매기도 우는구나’에 이르면 절로 울음이 터질 듯하다.

 ‘개도 1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도 연평도에서 비롯됐다. 60년대 말까지만 해도 철쭉꽃이 필 무렵이면 연평도 조기 파시(波市)가 열렸다. 전국에서 3000여 척의 고깃배가 몰려들어 조기잡이 등불이 불야성을 이뤘다. 술집 작부만 1000여 명을 헤아리는 저잣거리는 50여 일 동안 흥청댔다.

 그런 연평도가 23일 북한의 무차별 포격으로 충격과 비통에 휩싸였다. 포격으로 폐허가 된 지역은 60여 년 전만 해도 장을 보거나 자식들 교육을 위해 거룻배를 타고 수시로 드나들던 황해도 해안이다. 정전 이래 연평 해역에서는 남북 간의 군사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1월에도 바다 위로 북한의 장사정포가 떨어졌고 1999년과 2002년에는 1, 2차 연평해전이 벌어졌던 바다다.

 이 같은 충돌이 빚어질 때면 인천에 주재하는 기자들만이 공유하는 고민이 하나 있다. 비상사태로 여객선이 끊겨 전화 취재를 하면 주민들은 하나같이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왠 호들갑이냐’고 답해 온다. 60여 년 가까이 반(半)군사전문가가 될 정도로 남북 간의 충돌을 지켜본 데다 먼바다에서 벌어지는 전투여서 무감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바다에서는 젊은 목숨들이 왔다 갔다 하는 판에 ‘연평도는 천하태평’이라고 쓸 수는 없어 기자들은 고민 아닌 고민을 한다.

 그러나 이번은 확연히 다르다. 주민들이 사는 마을에 북한이 작심한 듯 포탄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정전 이후 첫 직접 공격에 연평도 주민들은 뭍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23일 북한의 포격으로 연평도에 도착한 여객선이 급히 회항할 때 승무원이 목격한 장면도 그렇다. 70대의 한 노인이 부두로 달려 나와 “나 좀 살려줘”라며 울부짖는 모습에 여객선을 다시 접안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날 밤 늦게 피난 주민들을 싣고 인천 연안부두에 도착한 어선의 한 선장은 “포탄이 쏟아져 불바다가 된 마을에서 선 채로 오줌을 싸버리는 중년 여인을 보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번 포격으로 연평도는 더 이상 사랑과 낭만, 뱃노래의 울림을 들을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사랑하는 뱃사람을 그리며 울었던 ‘눈물의 연평도’가 생업 터전과 사랑하는 자식과 형제를 잃은 ‘폭격의 연평도’가 됐기 때문이다. 정부도 국민들도 최북단 서해 5도 주민들의 불안감을 더 이상 남의 일로 여기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정기환 경기·인천 취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