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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우 병장, 말년 휴가 떠나는 날 배는 뜨지 못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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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고 서정우 병장(左), 고 문광욱 이병(右)

“내 군생활에도 말년에 침대를 써본다. (말년 휴가를 나가야 하니) 내일 날씨 안 좋다던데 배 꼭 뜨길 기도한다.”

 북한의 공격으로 전사한 고 서정우(21) 병장은 22일 개인 홈페이지에 이런 일기를 썼다. 공격 전날 밤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공격을 감행한 날은 서 병장의 14박15일 말년 휴가 출발일이었다. 그는 다음 달 전역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 병장은 원래 이달 초 휴가를 나가려다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문에 미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서 병장은 지난 7일 “집에 가기가 쉬운 게 아니구나”라는 일기를 올렸었다. 그는 홈피에 군 생활로 단련된 자신의 단단한 몸을 자랑하는 사진을 올렸다. 입대하기 전에 머리를 기른 사진도 있었다.

 해병대 서 병장은 전역 후 희망에 찬 생활을 꿈꿨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공격으로 결국 집으로 향하는 배는 뜨지 못했다. 서 병장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그의 미니홈피엔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후배인 듯한 한 방문자는 모든 게 착각이길 바라는 글을 올렸다.

 “형 왜 전화 안 받아? 형 어머니 폰으로 전화했는데 왜 왜 안 받아? 오늘 휴가 나온 거 맞잖아. 빨리 좀 받아 제발…동명이인이잖아. 사람들은 왜 여기 와서 난린데 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 안 죽은 사람한테. 나 한국 가면 제주도 놀러 가기로 했잖아. 나 이렇게 울고 있는 거 처음이야. 그니까 전화 받아 영화 보고 있는 거지? 장난치는 거면 형 다신 안 봐.”

 이날 함께 사망한 문광욱(20) 이병은 해병대 1124기로 올해 8월 훈련소에 입소한 신병이었다. 인터넷엔 그가 훈련소 시절 내무반 동기들과 찍은 사진이 남아 있다. 그가 훈련소에 있던 9월 5일, 문 이병의 아버지 문영조씨는 아들의 사진 밑에 “문광욱 우리 아들 든든하고 멋지다”고 답글을 달았다. 문 이병은 성실하고 밝은 스무 살 청년이었다. 문 이병의 집인 전북 군산시 수송동의 한 아파트에서는 가족들의 통곡이 끊이지 않았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한바탕 꿈이어야 돼요. 이럴 순 없어요.” 어머니는 오열했다.

 문 이병의 부모가 비보를 들은 것은 오늘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각. 집에는 아버지 문영조(47)씨와 어머니, 여동생, 큰아버지 문영구(57)씨가 모여 있었다. 큰아버지 영구씨는 “광욱이가 어제 엄마에게 전화해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는데 그게 마지막 전화가 되고 말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문 이병은 군장대학 1학년(신재생에너지과)에 재학 중이던 8월 입대했다가 최근 연평도로 배치됐다. 영구씨는 “군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자기 갈 길을 찾겠다며 1학기를 마치고 곧바로 군에 지원했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통곡했다.

 문 이병은 2남1녀 가운데 차남이다. 학교에서도 수업이 시작하기 20분 전에 와서 강의실을 정리해둘 정도로 성실했다고 한다. 문 이병을 가르쳤던 이희승 교수는 “뉴스에서 문광욱이라는 이름이 나와 설마설마 했는데, 너무나 안타깝고 슬프다”며 “늘 솔선수범하고 성적도 뛰어났던 아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또 “어차피 취업을 하려면 빨리 군대를 다녀오는 게 유리할 것 같다며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더욱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승우 군장대 총장은 “내일 교수들과 함께 분당 국군수도병원으로 조문을 갈 예정”이라며 “학생들이 조문할 수 있도록 학교에도 빈소를 차릴 것”이라고 밝혔다.

 ◆국군수도병원에 유해 이송=이날 오후 8시30분쯤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국군수도병원에 군용 헬기 2대가 도착했다. 이 헬기는 북한 공격으로 숨진 서정우 병장과 문광욱 이병, 그리고 부상 장병 16명을 이송했다. 병원에는 숨지거나 다친 병사들의 가족들도 속속 도착했다. 고 문광욱 이병의 고모부와 고모, 여사촌 2명이 울면서 장례식장에 들어갔다.

장대석·이한길·심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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