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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꽝~꽝” 순식간에 민가 5채 날아가 … 주민들 “6·25 끝나고 이런 전쟁 상황은 처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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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3일 오후 연평도는 전쟁터였다. 군부대뿐만 아니라 민간인 거주지까지 포탄이 떨어지자 연평도 주민들은 혼비백산했다. 북한이 포탄을 발사하기 시작하고 27분이 지난 오후 3시1분12초에 연평면사무소 뒤편으로 포탄이 떨어져 터졌다(사진 1). 연평도 부둣가에서 주민과 여행객들이 화염과 연기로 뒤덮인 섬을 바라보고 있다(사진 2). 오후에 떨어진 포탄으로 발생한 연평면사무소 뒷산의 화재가 미처 진화되지 못하고 야간에도 계속되고 있다(사진 3). [연평면사무소 CCTV·KBS 화면 캡처, 연평도 여행객 제공]


23일 오후 2시34분. 연평도에는 ‘쾅·쾅·쾅’ 하는 20발의 포격 소리가 울려 퍼졌다. 포탄이 떨어진 곳마다 시뻘건 불길이 솟구쳤다. 휴전선에서 3.4㎞ 떨어진 연평도가 순식간에 전쟁터로 돌변했다. 포성은 오후 3시42분까지 이어졌다. 100여 발의 포탄이 연평도에 떨어졌다. 인천 연평면 중부리에 사는 김광춘(52)씨는 “ 인천으로 가는 손님을 배웅하러 여객선 부두에 나가 있었는데 포탄 소리가 났고 순식간에 동부리와 중부리가 불바다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순식간에 집 5채가 날아갔다. 이런 전쟁 상황은 생전 처음 본다”고 덧붙였다.

연평도 해병부대에 근무 중인 아들을 면회하고 돌아오던 한미순(52)씨는 “민박집 승합차로 부두로 가는데 갑자기 차 위로 ‘빠바빡’ 하는 소리를 내며 포탄이 날아가 차에서 내려 차 밑에 엎드렸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처음엔 훈련인 줄 알았는데 군인들이 ‘이것은 실제 상황’이라고 해서 배를 향해 하도 정신없이 뛰어 양쪽 구두를 모두 잃어버리고 양말만 신은 채 배를 탔다”고 말했다. 북한군의 폭격으로 연평도에 있는 대성상회·해성여관·농협·면창고·조기역사관 등을 포함해 주택 21채가 불탔다. 이 중 5채의 주택이 직접 포격을 맞아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포탄이 떨어진 흔적은 섬 곳곳에 흉터처럼 생겨났다. 주민 박철훈(54)씨는 “포탄이 도로에 떨어졌는지 도로 한가운데가 10㎝ 정도 깊이로 파였고, 주변에는 40∼50㎝ 크기의 포탄 파편도 떨어져 있다”며 “이걸 맞았으면 즉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불도 발생했다. 전체 산림(7.28㎢) 중 76%(5.56㎢)가 불탔다. 불탄 나무 중 해송이 절반을 차지한다. 최철영 연평면사무소 산업팀장은 “청년과 의용소방대, 공무원 등 200여 명이 자발적으로 진화 활동을 하고 있지만, 불길이 거센 데다 장비도 부족해 불 끄는 데 애를 먹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평도의 하늘은 새카만 연기로 뒤덮였다. 섬 전체가 타오르는 듯한 기세였다. 전기가 나간 집이 절반 가까이여서 마을이 평소와 비교하면 어둡다. KT 송전소가 공격받아 전화·인터넷이 2시간가량 불통이 됐다. KT 연평중계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억수(53) 기사는 “통신시설로 살아 있는 것은 KT 유선전화뿐이다. 일부 마을에서는 그마저 불통이 됐으나 고치러 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3일 전 개인 일을 보러 인천에 나와 있는 장운길 중부리장은 “가족들이 섬에 다 있는데 전화가 불통이라 소식을 알 길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며 한숨 쉬었다.

 “실제 상황이니, 안내에 따라 방공호로 대피하라”는 면사무소 직원과 경찰의 안내에 따라 주민들은 방공호로 속속 대피하기 시작했다. 오후 5시55분쯤 연평도 전 주민이 섬 곳곳에 있는 방공호 19곳으로 대피를 끝냈다. 군 관사에 거주하는 군인 가족 162가구(299명)는 군 대피소로 대피했다. 방공호로 대피한 주민들은 오락가락하는 전깃불 사정으로, 촛불·랜턴을 켠 채 바깥 상황을 주시했다. 김광춘씨는 “부두에 있던 주민들이 마을로 갔다가 다시 안내에 따라 근처 방공호로 대피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대피한 이날 오후 마을은 텅 비었다. 방공호로 대피했던 290여 명의 주민이 어선을 타고 인천으로 나왔다.

 방공호에 피신한 주민들은 불안해했다. 땅속 깊숙이 콘크리트로 단단하게 만든 방공호지만 2차 포격이 이어져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옹진군 연평면 서부리 최율(55)씨는 “주민 40~50명과 방공호에 대피해 있지만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랜턴만 켜 놨고 주민 중 누가 다쳤는지, 죽었는지 알지 못해 주민들이 답답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불이 났는데 진화할 사람이 없어서 산으로 번지고 있어 사태가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새마을리 장인석(57) 이장은 “80명이 정원인 새마을리 대피소에 주민 130여 명과 함께 있다. 이 중 아이들만 50여 명인데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다”며 “집이 바로 앞이지만 나가지도 못하고 불안하고 걱정된다”고 말했다. 오후 6시50분쯤 방공호마다 컵라면·식수·모포·스티로폼이 지급됐다. 연평 초·중·고 통합학교에 다니는 학생 120여 명도 수업 도중 교사의 지시에 따라 뒷산으로 긴급 대피했다.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비해 서해 5도에 비상령이 내려졌다. 대청도에는 오후 3시5분부터 옥외활동이 전면 금지됐다. 백령도 주민들도 오후 3시22분부터 방공호로 대피했다. 백령도 두문진에 사는 정세훈(63)씨는 “천안함 폭침 사건 생각이 나 주민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며 “육십 평생 북이 섬에 직접 포탄을 때리는 것은 처음 봐 불안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인천시교육청은 연평도를 포함해 서해 5도의 학교에 무기한 휴업조치를 내렸다.  

인천=정기환·한은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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