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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가 공격당했다] 1953년 휴전 이후 끊임없이 계속된 북 도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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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3일 오후 북한군이 연평도 민가를 향해 포를 쐈다. 북한이 민간인을 상대로 포 사격을 벌인 건 6·25 이후 처음이다. 북한 전문가들조차 “공격 의도를 분석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할 정도로 유례가 없는 일이다. 북한은 그간 주로 남측 고위 인사나 군을 상대로 무력 도발을 감행해 왔다. 분단 직후부터 지속적으로 대남 도발을 벌였지만, 직접 민가를 향해 무력 공격을 가한 적은 없었다. 북한의 무력 도발은 1953년 휴전 이후 끊임없이 계속됐다. 시민단체 자유주의진보연합(공동대표 임헌조·최진학)이 올 6월 발간한 자료집 ‘6·25 이후 6·25’에 따르면, 북한은 휴전 이후 지금까지 지상·해상·공중·해외 등에서 모두 470여 건의 도발을 벌였다. 이 도발로 3700여 명이 납치되거나 부상하거나 사망했다. 도발 형태는 다양했다. 대통령 암살 기도부터 무장공비 침투에 이르기까지 남측을 상대로 한 무력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미 의회조사국이 2003년 발간한 ‘북한 도발 연표’에 따르면, 북한은 54년부터 92년까지 모두 3693명의 무장간첩을 남한에 침투시킨 것으로 보고됐다. 북한이 벌인 도발의 역사를 다섯 가지 유형별로 정리했다. ▶무력 공격 ▶항공기 테러 ▶대통령 암살 기도 ▶게릴라전 ▶납치·납북 등이다.

영해 침범해 연평해전 … 올해는 천안함 공격

■ 무력 공격

1999년 1차 연평해전 때 참수리325호(오른쪽)와 북한 경비정의 충돌 모습. [중앙포토]

북한군은 군함·잠수정 등을 동원해 우리 군을 위협해왔다. 99년, 2002년 두 번에 걸쳐 발생한 ‘연평해전’이 대표적이다. 1차 연평해전은 99년 6월 북한 경비정 6척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우리 영해를 침범하면서 시작됐다. 북한은 우리 해군의 경고를 무시하고 9일 동안 침입과 퇴각을 거듭했다. 결국 북한군은 ‘충돌식 밀어내기’ 전술로 방어하고 있던 우리 군에 선제 사격을 가했고, 남북 함정 간의 치열한 포격전으로 사태가 번졌다.

 2002년 6월 남북은 서해상에서 또 한번 교전을 치렀다. 연평도 서쪽 해상에서 북한 경비정이 기습 포격을 가하면서 벌어진 ‘2차 연평해전’이다. 이 교전으로 우리 해군 6명이 전사했으며, 19명이 다쳤다. 올 3월 해군 46명이 전사한 ‘천안함 사태’ 역시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에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났다.

1987년 KAL기 공중 폭파시켜 115명

■ 항공기 테러

1987년 KAL기 폭파 혐의로 김포공항에서 체포돼 압송되는 김현희. [중앙포토]

테러 역시 북한이 자주 감행하는 도발 행위다. 87년 11월 발생한 KAL기 폭파 테러는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었다.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한 대한항공 858 여객기가 북한 공작원 김현희가 사전에 장치해 둔 폭탄에 의해 공중 폭파되면서 탑승하고 있던 한국인 승객 93명과 외국인 2명, 승무원 20명 등 115명 전원이 숨졌다. 이 테러를 주도했던 김현희는 바레인에서 체포돼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69년 12월엔 승객과 승무원 51명을 태우고 강릉에서 서울로 가던 대한항공 여객기가 북한 간첩에 의해 원산으로 납북되는 사건도 있었다. 두 달 뒤 승객 중 39명만 풀려났고, 나머지는 현재까지 북한에 억류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8년 김신조 침투, 1983년엔 아웅산 테러

■ 대통령 암살 기도

1983년 폭파된 아웅산 묘소 잔해. 이 테러로 국가요인 등 17명이 숨졌다. [중앙포토]

북한은 우리 대통령의 암살까지 기도했다. 68년 1월 북한 정찰국 소속 무장공비 31명은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비밀리에 침투했다. 이들은 청와대 인근인 서울 세검정까지 들어왔다가 불심검문에 걸리자 수류탄과 기관총을 난사하며 저항했다. 무장공비 31명 가운데 28명은 사살됐고 2명은 달아났으며, 무장공비 가운데 한 명인 김신조는 현장에서 생포됐다.

 전두환 대통령이 재직 중이던 83년 10월엔 ‘아웅산 국립묘지 테러’ 사건이 있었다. 당시 북한은 전 대통령을 겨냥해 폭탄 테러를 감행했다. 전 대통령이 미얀마의 아웅산 묘소에 도착하기 직전 폭탄이 터져 화를 면했다. 하지만 서석준 부총리 등 전 대통령의 수행원 17명이 숨졌다.

울진·삼척 주민 학살 … 속초서 잠수정 좌초도

■ 무장공비 게릴라전

1996년 동해안에서 그물에 걸린 채 발견돼 예인되는 북 잠수정. [중앙포토]

남측에 무장공비를 비밀리에 침투시켜 게릴라전을 펼치는 건 북한이 즐겨 쓰는 도발 방식이다. 특히 남북 간 체제 경쟁이 치열했던 60~70년대 이 같은 도발이 집중됐다. 68년 10월엔 120명의 북한 무장공비가 울진·삼척 지역에 침투해 민간인을 학살하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 이 가운데 100명은 사살됐고 7명은 생포됐으며, 13명은 달아났다. 이듬해에도 침투는 계속됐다. 69년 3월 북한 간첩 6명이 침투해 강원도 주문진 인근 해안에서 경찰 1명을 살해했다.

  96년 9월엔 북한 잠수정이 속초 해역에서 좌초돼 우리 군이 무장공비 14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했다. 98년에도 속초 인근에서 북한 잠수정이 그물에 걸리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좌초된 잠수정에선 무장공비 9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1955년 대성호 납북 … 신상옥·최은희 납치

■ 납치·납북

1978년 납북된 신상옥·최은희 부부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김정일. [중앙포토]

우리 어민이나 군인, 유명 인사들을 상대로 한 납치도 끊이지 않았다. 한국전쟁 직후인 55년 5월엔 우리 어민 10명이 납치된 ‘대성호 납북 사건’이 벌어졌다. 북한에 의한 첫 어선 납치 사건이다. 70년 6월에도 연평도 인근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해군 방송선을 납치됐고, 87년 1월엔 서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동진호가 북한으로 납치됐다.

 남측 유명 인사들에 대한 납북 공작도 계속됐다. 78년 1월 배우 최은희씨가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됐으며, 같은 해 7월 남편인 신상옥 감독 역시 납치됐다. 이들 부부는 납치 5년 뒤인 83년 3월 극적으로 탈출했다.

강혜란·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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