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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환영의 시시각각

모방의 어려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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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환영
중앙SUNDAY 지식팀장

이슬람 세계에서는 코란의 ‘모방 불가능성(inimitability)’을 주장한다. 온 인류가 매달려도 코란 같은 책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코란을 모방하는 게 왜 불가능한지를 깨닫기 위해서는 각 나라말로 번역된 코란을 읽는 것으로는 부족하며 반드시 아랍어 원전 코란을 읽어야 한다고 이슬람 신자들은 말한다.

 대부분의 경우 모방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어렵다. 요즘 창의력에 대한 강조 때문에 모방은 상대적으로 쉽거나 하찮은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모방은 인간 행동 중에서도 ‘고등(高等)’ 영역에 속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 모방과 상호작용하지 않는 창의성은 없다. 예술 이론에서도 모방만으로도 얼마든지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경영학에서는 모방의 대상을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라고 부른다. ‘최선 실천 사례’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베스트 프랙티스’는 어떤 결과를 얻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해당 분야가 인정하는 방법이다.

 한미파슨스 김종훈 회장이 쓴 『우리는 천국으로 출근한다』가 15일 출간돼 나오자마자 톱10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이 책에는 기업 세계의 ‘베스트 프랙티스’를 선도하는 내용이 대부분 담겨 있다. 한미파슨스는 1996년 국내 최초의 건설사업관리(CM) 회사로 설립됐다. 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사원을 해고하지 않고 버텼다. 그 후 국내외 700개 CM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36개국에 진출했다. 특히 한미파슨스는 서울 상암동 월드컵 주경기장의 CM 프로젝트를 수주해 공사기간 4개월 단축과 공사비 40억원 절감을 달성했다. 세계 16위 CM 회사로 부상한 한미파슨스는 올해에 1000억원가량의 매출을 기대한다.

 오늘의 한미파슨스를 낳은 것은 결국 ‘모방’이다. 이 회사는 7년 연속 ‘대한민국 훌륭한 일터상’을 수상했는데 그 이론적 바탕은 로버트 레버링 교수의 ‘즐겁고 행복한 일터(GWP)’ 이론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을 대표하는 500대 기업의 평균 수익률보다 ‘즐겁고 행복한 일터’로 선정된 100대 기업의 수익률이 6배가량 높다. 평사원에서 출발해 CEO가 된 김종훈 회장은 GWP 이론뿐만 아니라 ‘수평적 기업문화’ ‘서번트(servant) 리더십’ ‘디테일 경영론’도 ‘모방’했다. 베이징대 부설 디테일경영연구소에서 나온 ‘디테일 경영론’은 선진국·후진국의 차이는 디테일(detail·세부항목)에서 비롯된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한미파슨스는 임원은 5년, 직원은 10년마다 2개월 휴가를 보장하는 안식휴가제도를 실시한다. 김종훈 회장이 벤치마킹한 것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다. 빅토리아 여왕은 공직자들이 3년에 한 번꼴로 유급휴가를 가게 해 셰익스피어 작품 5편을 읽고 독후감을 쓰게 했다고 한다. ‘독서 경영’을 실천하고 있는 김종훈 회장이 권하는 책은 세계 일류기업 교세라를 세워 ‘경영의 신(神)’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의 『왜 일하는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도 우리가 모방해야 할 선진 경영 실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한미파슨스는 올봄 ‘따뜻한 동행’ 재단을 설립했다. 그 모델은 연간 4억 달러의 기금을 조성해 복지에 투자하는 미국의 ‘토크빌 소사이어티(Tocqueville Society)’라는 복지공동체다.

 한미파슨스를 다른 회사들이 모방할 수 있을까. 쉽지는 않을 것이다. 김종훈 회장은 말한다. “회사의 원칙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개개인의 삶이 더 중요하다.” “고객보다 회사 구성원인 사원이 더 중요하다.” 실천하기 어려운 원칙이다.

 모방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길이다. 그러나 내부 사정이 모방을 가로막기도 한다. 북한이 한국·중국·일본을 모방하지 않고 핵 프로그램에 집착하고 있는 것도 내부 사정 때문이다. 역사는 선진 모범 사례의 모방을 주저하는 나라나 기업은 도태한다는 점을 알려준다. 경영학에 따르면 베스트 프랙티스의 도입이 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모방은 필수적이지만 리스크도 따르는 어려운 선택이다.

김환영 중앙SUNDAY 지식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