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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뒤엔 MBA 명성 퇴색, 명문 출신도 일자리 잡기 어려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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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호 20면

리처드 풀드 전 리먼브러더스 회장은 MBA출신 39악덕 CEO39의 대명사로 꼽힌다 [중앙포토]

MBA 코스(비즈니스 스쿨)는 근대 대학의 원산지인 유럽식 학제가 아니다. 미국에서 개발됐다. 미국 직장인의 재교육을 위해 20세기 첫해인 1900년 탄생했다.20세기 초 미국에선 US스틸 등 거대 기업들이 줄줄이 설립됐다. 이들 기업은 규모가 작고 친인척이 오순도순 경영한 회사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 시장을 상대해야 했다. 그만큼 회사 조직이 방대해야 했다. 임직원이 간단한 셈법으로 거대해진 회사의 회계를 정리할 수 없게 됐다. 경험이나 육감에 의지해 전략을 수립했다가는 거대 회사를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었다. 경험의 한계를 뛰어넘는 전문지식으로 무장된 전문 경영인이 절실해졌다. 미국 대학들이 MBA 과정을 설치한 배경이다. 유럽 최초 MBA인 프랑스 인시아드(INSEAD)는 미국 다국적 기업들이 세계를 쥐락펴락한 1950년대 출범했다.

MBA 탄생 배경은 신입생 선발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재교육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미국 대학은 여러 직장을 경험한 지원자를 선호한다. 미국 경영대학원 입학시험인 GMAT 성적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한국 지원자들은 시험성적이 절대적인 상황에 익숙하다보니 GMAT 성적에 목을 매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MBA 졸업 후 계획, 사회활동 경력, 인터뷰 등도 아주 중요한 선발 기준”이라고 말했다.미국 MBA 출신인 미래에셋의 한 펀드매니저는 “직장 다니며 준비하는 바람에 GMAT 성적이 좋지 않았다”며 “코스를 마친 뒤 20년 뒤를 내다본 인생 계획에다 실행계획을 자기 소개서(에세이)에 자세히 써 합격에 도움이 됐다”고 귀띔했다.

미국 유명 대학 MBA 코스를 마치기 위해서는 2년 동안 2억원 이상 든다는 게 정설이다. 학비와 생활비 등을 합한 금액이다. 하지만 졸업한 뒤 국내 기업에서 억대 연봉을 받기는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럴듯한 외국 기업에 취직하는 일도 말처럼 쉽지 않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컨설팅회사나 투자은행을 빼고 MBA 출신을 많이 뽑는 기업은 많지 않다.

최근 MBA 코스 순위를 매긴 비즈니스위크는 “금융위기 때문에 미국 유명 MBA 출신들도 일자리 잡기가 쉽지 않다”며 “유명 비즈니스 스쿨마저도 졸업생 취업에 필사적”이라고 보도했다. 직장인들이 더 나은 인생을 위해 MBA 코스를 지원하려고 한다면 냉정하게 셈을 해봐야 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기업 경영자나 투자은행가, 컨설턴트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MBA는 아주 좋은 선택일 수 있지만 일반 회사 생활에는 큰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고 조언한다.

제프리 스킬링 전 엔론 최고경영자(CEO), 리처드 풀드 전 리먼브러더스 CEO, 비크람 판디트 씨티그룹 회장, 스탠리 오닐 전 메릴린치 CEO 등의 공통점은 모두 MBA 출신이란 것이다. 이들은 회사를 부실하게 만들었거나 망하게 한 경영자들이기도 하다. 리먼 사태의 주범인 풀드는 뉴욕대학 스턴 비즈니스 스쿨 출신이다. 엔론을 무너뜨린 스킬링과 ‘양키 금융의 격조를 윤리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킨 회사’라는 평가를 받은 메릴린치를 위기에 몰아 넣은 오닐은 하버드대학 비즈니스 스쿨 출신이다. 뉴욕 컬럼비아대학 MBA 출신인 판디트는 세계 최대 금융그룹인 씨티그룹이 구제금융을 받을 수밖에 없는 회사로 만들어놓았다..

그들은 어두운 면이 밝혀지기 전까지 모교의 영웅이었다. 풀드는 흔들리는 회사를 되살려 놓은 경영자로, 스킬링은 닷컴시대 신경영의 아이콘으로 추앙받았다. 뉴욕과 하버드 대학 경영학과 교수들은 두 사람의 경영 방식과 전략을 분석한 논문과 보고서를 경쟁적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이런 풍경 이면에는 그들이 내놓은 엄청난 기부금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뉴욕 타임스(NYT)는 위기 주범들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했던 지난해 3월 MBA 특집을 보도하면서 “뉴욕이나 하버드 대학은 향기롭지 못한 과거 일에 대해 전혀 사과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비판 여론이 커지자 미국과 유럽 대학들은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에 치중한 기존 교육과정 대신 ‘사회책임’ ‘지속 가능한 개발’ ‘화이트 칼라 범죄’ ‘비정부기구(NGO) 리더십’ 등 코스를 새로 개설하고 있다. 미 예일대학 비즈니스 스쿨 학장인 셰런 오스터는 최근 이코노미스트지와의 인터뷰에서 “경영의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지 않으면 MBA는 의미가 없다”며 “비즈니스 스쿨은 유능한 간부가 아니라 ‘리더’를 배출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MBA 교육과정 못지않게 이른바 ‘MBA 랭킹’도 비판의 도마에 올라 있다. 현재 세계 MBA 순위를 매겨 발표하는 메이저 매체는 다섯 곳이다. 미국의 비즈니스위크·포브스·US뉴스앤드월드리포트,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와 파이낸셜 타임스(FT) 등이다. 미국 쪽 매체는 미국 대학 MBA 코스를, 영국 쪽 매체는 자국이나 유럽 지역 MBA 코스를 1등으로 발표하기 일쑤다. 실제로 올해 미 포브스는 스탠퍼드 비즈니스 스쿨을 1위로 꼽았다. 반면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스페인의 IESE를 1위로 선정했다. 매체들이 자기 지역 MBA가 좋다고 간접적으로 마케팅하는 셈이다.

다섯 매체들은 졸업생들의 GMAT 성적과 학점, 졸업 이후 첫해 연봉 등을 기준으로 MBA 순위를 매긴다. 각 항목에 서로 다른 가중치를 주기 때문에 순위가 제각각이다. 비즈니스위크 평가 방법을 개발한 존 번은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서 “다섯 매체들은 논란을 피하기 위해 숫자로 확인되는 정보만을 바탕으로 순위를 매긴다”며 “학생들이 MBA 코스를 밟는 동안 어떤 만족을 느꼈는지를 따져 보면 순위는 크게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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