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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토크] 섹스의 사각지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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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간 뒤돌아서서 각자의 길을 걸어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에게서 멀어져가는 그 사람의 등을 보는 일은 언제나 힘이 든다.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멀어져가는 그 등을 보고 있노라면 쓸쓸해져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올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항상 먼저 내가 돌아서는 사람, 돌아서서는 다시 뒤돌아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 때문에 종종 냉정하다는 얘기를 듣곤 했지만 차가운 사람이 아니라 약한 사람이라 뒤돌아볼 수 없을 뿐이었다.

얼마 전 지하철 입구에서 인사를 하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헤어진 그가 계속 손을 흔들고 서 있었다. 내가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내가 안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고 있던 그 모습이 이상하게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누군가의 등을 봐주는 일은 강하면서도 다정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그의 등을 볼 수 있는 순간은 지금 그가 내 곁을 떠나지 않는 사랑을 확인하는 그 순간이다. 그의 목선을 따라 내려와 어깨와 단단한 등에 입 맞추다 뒤에서 그를 꼭 끌어안을 때는 오히려 감격스럽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춰본다면 남자들에게 있어서 등이라는 신체부위는 섹스의 사각지대인 듯 하다. 키스를 하며 내 목을 감싸고 있던 그의 팔이 허리 즈음 내려온다. 정확히 내 티셔츠로 파고드는 그 강한 팔은 거추장스러운 셔츠와 브래지어를 순식간에 제거하고 가슴을 공략한다.

창의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다음 순서. 내가 몸을 비틀어 등을 보여도 나를 부침개 뒤집듯이 똑바로 눕힌다. 그리고 최종 목적지를 향한 집요한 여정을 계속할 뿐이다. 정말이지 ‘등’은 가방 멜 때만 쓰는 신체부위가 아니다.

등을 완전히 노출하게 되는 후배위일 때에도 등은 버림받은 존재다. 좀 더 강하게 삽입하기 위해 허리를 붙잡거나 어깨를 잡을 때에도 등은 완벽하게 무시된다. 시야에서 벗어난 가슴은 움켜잡으면서 눈 앞의 등을 어루만져 주거나 키스하는 세심한 남자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물론 그 순간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렇게 허리와 허벅지에 반동을 주며 움직일 때는 다른 건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내 등은 그 순간 멀어져가는 그의 등을 볼 때만큼이나 쓸쓸함을 느낀다.

손바닥, 손목 그리고 팔에 정성스러운 입맞춤을 하고 난 뒤 어깨와 목, 그리고 등으로도 따뜻한 그의 입술이 이어지길 바란다. 그러나 그런 다정다감한 키스는 공들여야 하는 척 섹스, 운 좋으면 뒤이어 한두 번. 그 이후에는 종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섹스에 있어서 등은 쉽게 잊히는 부위가 된다.

그러나 등을 애무하고, 적당한 힘을 줘서 척추뼈를 쓸어주는 방식의 어루만짐은 짜릿함 뿐만 아니라 충분한 만족감까지 준다. 내가 보지 못하는, 내 손이 닿지 않는 그 곳까지 누군가 어루만져주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섹스를 할 때 등을 빠뜨리지 않는 습관. 사랑받을 수 있는 비법이 될지도 모른다.

■ 현정씨는
사랑과 섹스에 대한 소녀적인 판타지가 넘치지만 생각 보다는 바람직한 섹스를 즐기는 20대 후반의 여성이다. 블로그 <생각보다 바람직한 현정씨> http://desirable-h.tistory.com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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