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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 페스티발] 숨겨진 성 욕망 넌지시 까발리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당신은 어느 쪽인가. 영화 ‘페스티발’은 거북살스럽게도 혹은 발칙하게도 당신의 성적 취향에 대해 대놓고 묻는다. 오지랖 넓게시리 당신의 성적 판타지에도 호기심을 갖는다.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겉으론 평범해 보이는 갑남을녀지만, 사생활만큼은 남다르다. 경찰 장배(신하균)는 ‘사이즈’에 대한 과도한 자부심이 있다. 하지만 영어강사 애인 지수(엄지원)는 그의 일방통행식 요구에 질려 몰래 ‘용품’을 주문한다. 한복 바느질로 딸을 홀로 키운 순심(심혜진)은 철물점 남자 기봉(성동일)을 만나 서로의 SM(가학-피학)충동을 충족시키는 비밀행각에 빠진다. 순심의 여중생 딸 자혜(백진희)는 섹스인형을 진짜 애인처럼 착각하며 사는 포장마차 주인 상두(류승범)에 반한다. 자혜의 담임 광록(오달수)은 아내의 선물을 고르다 자신 안에 숨겨져 있던 복장도착의 본능에 눈뜬다.

 이 사람들, 괴상한가. 비정상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정상? ‘페스티발’은 네 가지 에피소드를 번갈아 보여주며 묻고 또 묻는다. SM·복장도착·마스터베이션·페티시 등 소재는 만만치 않다. 다행히 질문을 던지면서 웃겨주니 거북한 심정은 한결 덜하다. 이런 대화를 밀실에서 광장으로 옮겨오는 이 영화만의 비기(秘技)라고나 할까. 배우들로서도 이 섹스코미디는 모험이었을 터다. 씹던 밥알을 남김없이 밖으로 튀겨내며 자신의 ‘사이즈’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신하균이 눈에 띈다. 심혜진이 성동일한테 건네는, “기봉아, 우리 지옥 가자”는 말은 이 영화를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 중 하나다. 류승범이 포장마차 트럭 안에서 벌이는 ‘원맨쇼’는 ‘올해의 장면’감이다.

 ‘페스티발’의 각본과 연출은 ‘천하장사 마돈나’로 2006년 영화제 신인감독상을 휩쓸었던 이해영 감독이 맡았다. 데뷔작에서 돋보였던 성적 소수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온기를 잃지 않는다. “살다 보면 세상에 변태엄마도 있는 거야”라는 순심의 대사엔 ‘타인의 취향’이 나와 다를지라도, ‘주류’의 의견이 아닐지라도 온전히 인정하자는 그의 간절한 소망이 압축돼 있는 듯하다. 그래서 감독은 취향을 묘사하는 데 관심 많은 탐미주의자라기보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생각을 영상언어로 펼치는 온건한 운동가에 가까워 보인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페스티발’은 섹스코미디를 표방하면서도 표현수위는 상당히 점잖은 편이다. 섹스코미디의 단골 메뉴인 ‘화장실유머’도 거의 없다. “머리에 우담바라가 피겠네”같은 표현은 상투적이고 기계적인 대사를 남발하는 많은 영화들에 경종을 울린다.

 하지만 네 남녀와 한 남자의 갈등이 한 곳으로 수렴되는 결말은 설익어 보인다. 밝고 명랑한 음악(엄정화의 ‘페스티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모든 갈등이 사라지고 모두가 모두를 인정하는 축제 같은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불행히도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페스티발’은 그물망은 잘 던져놓고 정작 고기를 끝까지 제대로 거둬들이지 못한 듯한 아쉬움을 남긴다. 18일 개봉.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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