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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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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조선 시대에는 서울(한양)의 4대문 밖만 나서면 시골로 쳤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경인(京人)으로,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온 사람은 향인(鄕人)으로 불렸다. 향인도 서울에서 오래 살다 보면 경인이 됐다. 근대에 들어 경인은 ‘서울내기’로, 향인은 ‘시골뜨기’로 변천했다. 서울은 ‘세련’ ‘현대’라는 의미로 통했다. 표준어 정책에도 반영됐다. 1933년 조선어학회는 ‘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중류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정했다. 88년 표준어 고시(告示)에서도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했다.

 서울말이라고 모두 표준어는 아니다. “어딜 싸돌아 댕기다 이제 오냐….” 서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40~50대가 부모에게서 흔히 듣던 말이다. ‘댕기다’는 ‘다니다’의 서울 사투리로 분류된다. 표준어에서 ‘댕기다’는 ‘불이 옮아 붙다’라는 뜻의 완전히 다른 말이다. 개와집(기와집), 삼춘(삼촌), 가우(가위), 구녕(구멍), 낭구(나무), 겨란(계란) 등도 서울 사투리에 속한다. “밥도 먹구, 영화도 보구…”처럼 표준어의 ‘ㅗ’가 아직도 서울식 표현의 ‘ㅜ’로 곧잘 쓰인다.

 서울말도 전라도나 경상도 말처럼 서울 토박이가 사용하는 방언(方言)에 불과하다. 언어학적으로 토박이는 3대째 이상 한곳에서 거주한 사람들을 기준으로 한다. 압축적인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라 지방에서 서울로 인구 유입이 가속화하면서 서울 토박이는 퇴조하고 있다. 서울 방언 중 70%는 표준말에 편입됐지만 나머지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고 한다.

 국어문화원 등이 후원해 최근 서울에서 열린 ‘서울말 으뜸 사용자 선발대회’는 서울말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 서울 토박이 20여 명이 나와 ‘쨍아(잠자리)’ ‘중신(중매)’ ‘-했걸랑’ 등 토속적 냄새가 나는 서울 사투리를 풀어냈다. 박목월은 시 ‘사투리’에서 ‘우리 고장에서는/오빠를/오라베라 했다/그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로/오오라베 부르면/나는 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고 했다. 오빠를 오라베라는 경상도 사투리로 불러야 제맛이 있다는 뜻이리라. 사투리가 주는 정감이 그런 거다.

 서울은 예전의 서울이 더 이상 아니다. 자신이 시골뜨기라도 그의 2세, 3세는 서울내기로 변하고 있다. 사투리에는 한 시대의 정신과 문화가 고스란히 스며 있다. 지방 방언과 함께 사라져가는 서울 방언을 되살리는 데 사회적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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