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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문제 ‘경주선언’보다 진일보 … 개도국 개발, B20 정례화는 서울 G20의 작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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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명박 대통령이 1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G20 정상회의가 폐막한 뒤 내외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조문규 기자]

입이 벌어질 만큼 크지도, ‘그게 그거다’고 할 만큼 작지도 않았다. 지난달 경주에서 나온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들의 합의와, 12일 서울에서 나온 G20 정상들의 합의 내용 수준의 차이가 그렇다.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의 사공일 위원장은 “의제의 60~70%를 차지하는 기존 의제와 나머지 한국이 주도한 의제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해외의 시선은 그리 뜨겁지 않다. 특히 막판 최대 쟁점이었던 환율 문제와 관련, 도약이라기보다 ‘반 걸음’쯤 더 나아갔다는 평이 많다. 이창용 G20 기획조정단장도 “경주 합의가 있은 지 2주일밖에 지나지 않아서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나름의 길 찾은 환율 해법=서울 정상회의가 환율 갈등에 대한 즉각적이고 구체적이며 실효성 있는 해결 방안을 내놓은 건 아니다. 이 문제의 묘수풀이를 내년 프랑스 회의로 ‘조건부 이월’한 셈이다. 외신들의 심드렁한 반응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의미 있는 진전이 있었다는 게 한국 정부의 설명이다. 환율 갈등의 바탕이 된 글로벌 경상수지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내년 6월까지 만들자는 일정에 합의한 것도 의미 있는 성과라는 것이다.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어느 수준으로 관리하자는 수치 목표를 정하진 못했지만, 기본방향엔 합의했다. 불균형을 적시에 식별할 수 있고, 예방과 교정을 수반하며, 여러 지수를 포함하는 종합적 지표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의 양적 완화에 대한 각국의 비난이 속출한 데다 독일·일본 등 수출대국이 수치 목표제에 대해 반대했던 점을 고려하면 괜찮은 합의라는 게 회의 소식통의 전언이다.

 사실 환율은 경제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국가 간의 미묘한 이해가 걸려 있는 국제정치 이슈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G20이 ‘최상위 국제경제 포럼’으로서 환율 이슈를 솜씨 있게 요리하기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환율 갈등이 불거지자 한국이 환율 대신 ‘경상수지’라는 우회로를 택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창용 단장은 “우리가 의장국이 아니었으면 이만한 성과도 못 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장국의 리더십=한국 정부는 ‘서울 이니셔티브’를 강조한다.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대출제도 개선을 중심으로 하는 글로벌 금융안전망과 개발 의제를 주도했고, 합의를 이끌어냈다. 서울 회의에선 후진국에 자유시장 도입을 설파하는 ‘워싱턴 컨센서스’를 대체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는 ‘다 함께 성장을 위한 서울 개발 컨센서스’에도 합의했다. 후진국에 대한 원조도 중요하지만 자생력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진짜 해법임을 선언한 것이다.

 급격한 자본 이동에 따라 환율 변동성이 심해진 신흥국에 대해 거시건전성 규제를 허용키로 한 것도 성과로 꼽힌다. 핫머니 유출입으로 외환시장이 출렁이는 상황이 닥칠 경우 자구책을 취할 길을 열어준 것이다. 신현송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은 “자유로운 자본이동을 통제한다는 의미의 ‘자본통제’가 아니라, 주된 목적은 금융안정 도모와 거시건전성 제고”라고 강조했다. 또 경제학 교수 출신인 이창용 단장은 거시건전성 규제 도입과 관련, “나 같은 신고전학파 경제학자의 시각에서 보면 쇼킹한 사건”이라고도 표현했다.

 ◆서울회의 평가는 미래형=1박2일간의 진통 끝에 접점을 찾은 서울선언은 서문 20개 항에 합의문 74개 항으로 구성됐다. 한글판이 A4 용지로 40쪽에 달한다. 여기에 부속서도 3개 따라붙으면서 지금껏 다섯 차례의 정상회의 가운데 가장 방대한 분량이 됐다. 그만큼 서울 회의가 다룬 의제의 스펙트럼이 넓었다는 방증이다. 또 토론토에서 서울로 넘긴 의제 중 상당수가 해결됐다. 금융개혁이 대표적이다. 사공일 위원장은 “바젤Ⅱ 규제를 도입하는 데 10년이 걸렸는데 이번 바젤Ⅲ 규제는 18개월 만에 합의했다”고 말했다.

 G20 정상회의와 세트로 열린 비즈니스 서밋의 정례화에 합의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이 행사가 기업인들의 단순한 친목회가 아니라 거대한 비즈니스 활동의 장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게 이번 회의에서 증명됐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건 행동이다. 내년 상반기까지 경상수지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는 합의의 이행이 바로 그것이다. G20이 경주와 서울 합의를 얼마나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는지, 이를 이행하지 않는 나라에 대한 회원국의 ‘압력’엔 얼마나 무게가 실릴지가 결국 서울 회의의 성패를 결정할 전망이다.

글=허귀식·서경호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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