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 뚫린 서울 길 … 성숙한 시민의식이 ‘G20 국격’ 빛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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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정상회의 개막일인 11일 오후 ‘자율 차량 2부제’에 대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주 회의장인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인근 도로가 원활한 교통 흐름을 보이고 있다. 12일은 짝수 번호 차량이 운행하는 날이다. [강정현 기자]

서울 명동에 사무실이 있는 회사원 김종욱(36)씨의 승용차 끝번은 홀수다. ‘자동차 자율 2부제’가 시행된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개막일인 11일이 홀수날이어서, 김씨는 부담 없이 승용차를 타고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김씨는 “부천이 집이어서 평소 승용차를 이용한다. 하지만 국가적으로 큰 행사가 열리는데 교통상황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돼야겠다는 생각에 지하철을 탔다”고 말했다. 그는 출근 후 대부분의 회사 동료가 대중교통을 이용한 사실을 알고 ‘한국 사회가 성숙했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G20 정상회의 첫날 우려했던 교통 혼란은 없었다. 오히려 평소보다 교통량이 많이 줄었다. 경찰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영업용 차량을 제외하고 이날 출근시간대(오전 7~8시)에 자율 2부제에 참여한 시민이 전체의 62%에 달했다.

 경찰이 같은 시각 강남지역 12곳의 교통량을 측정한 결과 6만4534대의 차량이 통행해 지난주 목요일인 4일(7만4803대)에 비해 13.7% 감소했다. 이로 인해 평균 속도는 13% 상승했다. 행사장인 서울 코엑스 옆 포스코사거리의 교통량은 무려 70.7% 감소했다. 경찰 관계자는 “시민들이 차량 2부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교통량이 전반적으로 줄어든 것 같다”며 “특히 행사 관련 홍보가 잘돼 코엑스 주변 교통량은 많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체감한 교통 상황도 비슷했다. 택시기사 이모(43)씨는 “평소 상습 지체구간인 한남대교와 남산 1호 터널을 막힘 없이 통과했다”며 “차를 가지고 나온 사람이 평소보다 확 줄었다”고 말했다.

 코엑스와 연결된 삼성역 근처 테헤란로에 집중된 회사들은 G20 행사를 고려해 출근시간을 자율적으로 늦췄다. 테헤란로에 위치한 투자회사에 다니는 신재은(26)씨는 “많은 사람들이 오전 10시까지 출근하도록 회사가 배려해줘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여유 있게 사무실에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코엑스 맞은편에 위치한 한국전력도 출근시간을 오전 10시로 늦췄다.

 출근시간인 오전 7~9시의 지하철 이용객 수는 평소보다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코엑스 인근인 선릉역 근처에서 근무하는 김동완(35)씨는 “평소보다 지하철에 사람이 많았다. 조금 힘들긴 했지만 국가적 행사에 이 정도 불편은 괜찮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40자 이하 단문(短文)의 글을 올리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트위터’에는 선진 시민의식에 대해 칭찬하는 글이 많이 올라왔다. 아이디 ‘swe***’를 쓰는 사용자는 “G20으로 국격이 올라가 올림픽(대로)도 강변북로도 뻥뻥 뚫린다고 하네요. 아침 길이 오늘처럼 한산한 건 추석 때도 못 봤어요”라는 글을 올렸다. 아이디 ‘Ean***’는 “대중교통 이용한 운전자 여러분 사랑해요”라고 했고, ‘dre***’는 “착한 우리 시민들~ 2부제 실시하면 얼마나 동참할까 했는데… 대중교통 출근하는 당신을 칭찬합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이날 저녁 한때 비가 내리면서 집회가 벌어지자 서울역 인근 등에서 극심한 정체 현상이 빚어졌다.

민주노총과 한국진보연대 등 ‘G20대응 민중행동’ 회원들이 11일 서울역광장에서 G20 반대 집회를 열었다. 외국인 활동가들이 집회에 참가해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 날 집회는 경찰과 큰 충돌 없이 끝났다. [김태성 기자]

 ◆서울 도심서 G20 반대 집회=민주노총과 참여연대 등 80여 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G20대응 민중행동’은 이날 서울역광장에서 3500명(경찰 추산)이 참석한 가운데 ‘G20 규탄 국제민중 공동행동의 날’ 행사를 열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경제위기의 책임을 전가하고 알맹이 없는 G20을 규탄한다”며 “금융거래세를 도입해 위기의 근본 원인인 금융자본을 통제하라”고 촉구했다.

집회에는 알레한드라 앙그리만 아르헨티나노총 여성평등위원장과 다니 세티아완 인도네시아 외채반대네트워크 대표 등 외국 시민단체 활동가도 참석했다. 이들은 오후 5시부터 한강대로 방향 도로 3차선을 점거하고 남영역 삼거리까지 거리행진을 벌였다.

글=김효은·심서현 기자
사진=강정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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