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100년 전 바랴크함, 8개월 전 천안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8면

정기환
경기·인천취재팀장

1904년 2월 9일 인천 팔미도 앞바다. 아사마함(9750t) 등 5척의 군함으로 편제된 일본 해군 우류 전투대가 러시아 순양함 바랴크함(6500t)과 포함 코레츠함(1200t)을 급습했다.

 러일전쟁 개전과 함께 러시아 뤼순함대를 치러 북상하던 일본 연합함대가 인천항으로 별동대를 보낸 것이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인천 앞바다에서는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졌다. 러시아 군함들은 1시간여 만에 만신창이가 된 채 소월미도로 쫓겨갔다. 초라했다. 그러나 바랴크함의 함장 류드네프 대령에게 항복이란 치욕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날 오후 인천 앞바다에서는 바랴크함과 코레츠함이 차례로 자폭했다. 훗날 일본 작가 시바 료타료는 ‘당시 바랴크함은 530발의 포탄을 쏴 댔지만 한 발도 명중시키지 못했다’며 ‘유럽인들과의 첫 해전에서 승리하면서 일본 해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며 기고만장했다(소설 『언덕위의 구름』).

 그로부터 100년 후인 2004년 2월 인천 연안부두. 팔미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해안에 러시아 정부가 ‘바랴크함 추모비’를 세웠다. 러시아에서 실려 온 커다란 검은 돌에는 ‘바랴크함과 코레츠함 수병들의 희생을 기념하며…러시아 국민들로부터’라는 문구가 새겨지고 주위에는 자작나무가 심어졌다. 1997년 2월에는 ‘바랴크’로 명명된 최신형 순양함이 인천 앞바다를 찾아 해상헌화를 하며 현지 추모행사를 가졌다. 이후 매년 2월 인천 앞바다에서는 바랴크함을 추모하는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9월 인천시 사절단은 발트해 연안의 러시아 군항도시 크론시타트를 찾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속한 이 도시가 인천시에 우호도시 결연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크론시타트는 바랴크함이 인천 앞바다에서 자폭하기 1년여 전에 마지막으로 출항한 모항이다. 사절단에 참가했던 인천시 관계자는 “바랴크함은 그곳 교과서에도, 즐겨 부르는 노래 속에도 살아 있었다”고 전했다.

 지난달 러시아는 인천시에 바랴크함 함기(艦旗)의 장기 임대를 요청해 왔다. 러시아 중앙해군박물관이 조국에 대한 헌신과 희생의 상징으로 바랴크호의 깃발을 전시하고 싶다는 뜻을 표해온 것인데 인천시는 이를 받아들였다. 인천시립박물관은 바랴크·코레츠함의 함기와 제정 러시아의 국기, 바랴크함의 포탄·닻 등 모두 15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이미 러시아는 지난해 7월에도 이 유물들을 임대해 올해 3월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9개 도시에서 순회 전시회를 열었었다.

 인천 앞바다는 뱃고동의 낭만만 있는 게 아니다. 청일전쟁 이래 숱하게 많은 해전이 있었고 그때마다 하얀 제복의 수병들이 자신들의 조국을 부르짖으며 스러져간 절규의 현장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꽃다운 청춘 46명이 산화한 천안함 폭침도 불과 8개월여 전의 일이다. 이날의 치욕과 숭고한 희생을 잊지 말자고 인천 옹진군이 6개월 전 정부·국회 등에 백령도 추모공원 건립을 건의했었다. 그러나 옹진군 당국은 아직 아무런 답도 듣지 못해 답답해 하고 있다. 하나 더, 인천시도 기념관이든 공원이든 천안함 장병들을 영원히 기억하려는 일에는 손을 놓고 있다. 100년 전 바랴크함이 새삼 떠오르는 이유다.

정기환 경기·인천취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