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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무 기자의 공공미술 산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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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 귀뚜라미 본사 앞에 설치된 조나단 보롭스키의 ‘하늘을 향해 걷는 사람들’.

최근 애매모호한 사기죄로 수감 중인 의형제 동생을 면회하고 음울한 기분이 되어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버스가 서울 강서구청 로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앞 유리창에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낯선 조형물 하나가 흰색 콘크리트 고층 빌딩 앞에 돌출한 느낌으로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조형물은 철제빔 또는 둥근 기둥이 지상으로부터 70도 쯤 들어 올려진 모습으로 장거리 곡사포의 포신처럼 꽤 위태롭고 아슬아슬해 보였는데 그 가파르게 서 있는 기둥 위로 두 팔을 힘차게 흔들며 일곱 명의 사람들(맨 앞에 어린 소녀·청년·젊은 여자·중년남자·부인·서류가방을 든 남자)이 기둥 밑으로부터 끝을 향해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허공을 향해 씩씩하게 걸어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다.

 “어라? 저렇게 올라가면 떨어질 텐데-”.

 나는 저 사람들이 계속 전진하다가는 기둥 끝에서 별 수 없이 땅으로 추락해 두개골이 박살날 수밖에 없다는 냉혹한 상상에 불안한 마음이 되어 주시하다가 구치소에 갇힌 의형제 동생이 면회실 유리벽에 소통을 위해 뚫어 놓은 30여개의 작은 구멍에 대고 “사업이란 쌍칼날 위를 걷는 것 같다”고 말하던 희미한 목소리를 떠올렸다. 어쩌면 몸을 3분의 2쯤 뒤집은 자세로 포신 위를 거의 거꾸로 걸어올라 가는 사람들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의동생의 그것과 일맥상통할 것 같다고 추측했던 것이다.

 기둥 꼭대기까지 다다라 더 올라갈 곳이 없다며 자기 위치를 고수하는 사람은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뒤에서 치고 올라오는 사람에게 밀려 다이빙 선수처럼 지상으로 추락할 것이다. 뒷사람에게 길을 양보해 준다한들 비켜나면서 몸이 휘청하여 역시 돌처럼 차가운 땅바닥에 머리를 쳐 박고 말 것이다. 그 어떤 기적이 일어난들 저 가파른(쌍칼날이나 외줄 같은) 기둥에서 떨어지지 않을 재주를 가진 인간은 없다.

 간혹 기둥 끝에서 떨어지는 순간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아나 하늘을 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역시 날개가 있으므로 언젠가는 추락하게 된다. 그런데 내 주변에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가파른 인생의 기둥에 오래도록 붙어 살 수 있을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 조형물의 작가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버스가 크게 반원을 그리면서 로터리를 통과할 때 고개를 돌려 그 조형물에 시선을 주었다. 원숭이 크기만 했던 사람의 형체가 점점 커지더니 진짜 밀랍인형만 했다. 나는 조형물을 만든 작가와 그의 의도를 알고 싶어 버스에서 내려 100m쯤 걸어가 다음과 같은 작품설명을 읽었다.

 ‘예술과 공학기술의 만남, 하늘을 향해 걷는 사람들,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귀뚜라미 문화재단. 2008년 10월 30일’.

“이런 제기랄! 내가 헛다리를 짚었네. 인생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잖아”하는 순간, 영문설명을 보고 조금은 위로를 받았다. 꿈이나 희망을 언급하지 않고 제목만 단 영문설명은 내 해석도 가능하다는 여운을 주며 웃고 있는 듯 했다.

 ‘Walking to the sky. Jonathan Borofsky, Height 30m, Stainless steel. Mixed media’. 높이 30m, 조나단 보롭스키, 스테인리스 강철. 그런데 mixed media는 무슨 뜻이지? 혼합재료란 뜻이겠다.

주위엔 나 혼자였고 이 조형물을 세운 건물은 휴일이라 문이 닫혀 있었다.

윤영무 MBC 인천총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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