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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시론

통일 준비 막는 담론 벗어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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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최진욱 통일연구원 남북협력연구센터 소장

최근 통일 비용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통일 비용을 절감하는 다양한 방법이 제시되고 비용에 비해 편익이 무궁무진하다는 것도 새삼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한동안 우리 사회에선 통일을 막대한 비용을 수반하는 위협적이고 두려운 것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통일 비용에 대한 균형 잡힌 논의는 통일에 대한 관심과 의지를 회복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통일 비용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통일 준비에 대한 반대와 통일 논의에 대한 거부감이 지속되는 것은 통일 비용 자체의 문제보다 새로운 통일담론의 취약성에 기인한다. 기존 통일담론은 남북의 이념과 체제가 너무 다르니 당장 통일을 논한다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것이었다. 통일의 원칙이나 통일의 미래상을 분명히 제시하지 못하고 통일한국의 정치체제로 남북한이 조금씩 양보하자는 수렴론과 심지어 북한의 변화를 전제로 하지 않는 ‘일대일 통합’ 등이 거론되기도 했다.

 통일 비전이 불투명해지고 통일 과정에서 우리의 주도권에 대한 자신감이 약화되면서 통일에 대한 관심과 의지도 서서히 사라졌다. 통일의 당위성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통일을 가급적 먼 훗날의 일로 미루고자 했다. 대신 경제·사회 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의 양적 확대가 남북관계 발전의 지표로 간주됐다. 남북경협이 증가할수록 북한이 변화하고,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낙관론이 기존 통일담론을 지배했다.

 그러나 우리의 전례 없는 포용정책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개혁개방을 거부하고 핵무기에 집착해 경협의 확대가 능사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오히려 북한의 경제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으며 급변사태에 대한 우려가 국제사회에서 급증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기존 통일담론에서는 북한의 붕괴 가능성을 부인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인식하에 논의조차 금기시했다. 북한 급변사태 가능성조차 부정하는 태도는 통일준비가 필요 없다는 입장을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이제 ‘경협 만능론’이나 ‘북한 붕괴 불가론’ 등과 같이 통일준비를 가로막았던 담론구조에서 벗어나 통일을 준비하는 새로운 담론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기존의 통일담론이 통일을 경제적 부담과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했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은 통일을 긍정적 기회로 간주하고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준비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언제, 어떤 형식으로 통일이 다가올지 알 수 없지만 잘 준비한다면 조기 통일을 피할 이유가 없다. 통일을 통해 북한의 비대한 재래식 군사력, 핵무기, 미사일 등의 문제가 해결된다면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와 전 세계에 엄청나게 긍정적 성과가 아닐 수 없다. 통일 준비가 전혀 없었을 때 갖던 통일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은 통일 준비가 제대로 진행돼 감에 따라 의지와 자신감으로 전환될 것이다.

 물론 새로운 통일 논의가 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만을 염두에 두고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통일이 반드시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오는 것만은 아니다. 경협 만능론 뒤에 숨어 있는 통일 기피증을 극복하고 통일을 위해 무엇을 준비할지 진지한 논의를 시작할 때다.

최진욱 통일연구원 남북협력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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