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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고교에 진학전문 상담제도 필요한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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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선 학교에서 방과후 수업 확충이나 각종 비교과활동 프로그램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입학사정관제 확대에 따른 것이지만 정작 개별학생에 적합한 맞춤형 진학지도는 쉽지 않다. 대학 입시제도가 워낙 다양하기도 하지만 학생 통합경력 관리에 대한 노하우가 없어서다. 외국인학교나 일부 외고, 자율고에서 운영 중인 칼리지 카운슬러 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다.

#1 지난해 9월 미국 스워츠모어대학에 입학한 손원빈(20)씨는 지금도 가끔 대학 입학원서 쓸 때를 기억하면서 가슴을 쓸어 내린다. 당시만 해도 대학은 ‘간판’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었다. 손씨 역시 유명 아이비리그대학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모교인 한영외고 칼리지 카운슬러로부터 상담을 받은 후 진로를 수정했다. 이름만 보고 대형학교에 들어가면 장학금 받기도 쉽지 않고, 대학원에 진학하기엔 스워츠모어 대학이 더 좋다는 것이 상담 내용이었다.

#2 지난해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수시전형에 합격한 이영현(20·가명)씨는 당초 학교에서 서울대 진학은 힘들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비교과영역 준비가 부족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상담교사는 이씨의 경력을 보고 다른 학교를 추천하기만 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결국 사설학원을 찾았다. 사설학원의 전문 카운슬러는 이씨의 경력을 보고 새롭게 전략을 세웠다. 진로와 상관없는 봉사나 비교과 활동은 오히려 경력에서 지웠다. 대신 정치외교와 관련된 경력을 적극적으로 부각시켰다. 외부 강연회 참여 등 평소 잊고 있었던 사소한 경력들이 새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씨는 전문 카운슬러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장점을 부각시켜 결국 합격했다.

최근 입학사정관제가 확대되면서 일선 고교의 진학지도에 비상이 걸렸다. 대학별로 전형방식이 천차만별인데다 학생들의 종합적인 경력관리가 되지 않아 맞춤형 진학지도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부 학교들은 아예 수시모집을 포기하고 수능시험에만 매달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 가운데 일반고에도 외국인학교나 일부 외고·자율고에서 운영하고 있는 칼리지 카운슬러(진학전문상담교사)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영외고 칼리지 카운슬러 김명수 교사는 “각 학교의 커리큘럼을 잘 따져봐 그에 맞도록 자신만의 차별화된 이력을 만들지 않으면 원하는 학교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을 좋은 학교에 보내는 게 아니라 가장 적절한 학교에 보내는 게 칼리지 카운슬러 본연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사는 교과목 수업 대신 해외유학반 학생들의 진학지도는 물론 국내진학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교 생활 전반에 관한 상담도 수시로 진행하고 있다.

용인외고 칼리지 카운슬러 민리(28)씨는 “해외 대학의 경우 담임교사의 추천서도 중요하지만, 칼리지 카운슬러가 객관적인 시각으로 학생을 판단한 추천서도 아주 중요한 판단 근거로 활용한다”고 말했다. “입학 당시부터 학생 개개인에게 관심을 갖고 지켜보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제도죠. 우리나라 학교들은 그게 힘들잖아요. 교사들 업무도 너무 많고 . 저도 지난해까진 영어교과목 수업을 했었는데 올해는 아예 이 일에만 전념하고 있습니다. 제도적인 보완이 있지 않으면 그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겁니다.”

입학사정관제 전문가인 조훈 메디치연구소 대표는 “미국대학 입시에서 칼리지 카운슬러의 역할은 절대적”이라며 “추천서에 학습태도나 심지어 필기 스킬(skill)이 어떤 학생이었는지 구체적 정보를 쓰지 못하면 합격률이 낮아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조 대표는 “국내에서도 입학사정관제가 확대된다면 칼리지 카운슬러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선 학교에서 이런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상대적으로 학교 운영에 자율권이 보장된 자율고조차도 적극적으로 칼리지 카운슬러를 운영하는 학교는 찾아보기 힘들다. 교사의 숫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수능 반영 교과목 축소로 ‘기술’ 등 일부 과목을 없앤 휘문고는 3명의 교사를 확보해 진학전문상담제도를 운영할 계획이다. 김선창 교장은 “일선 학교에서는 교사들의 업무 부담이 너무 많다”며 “칼리지 카운슬러의 취지는 좋지만 1년 내내 여기에만 전담하는 교사는 정책적으로 지원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과교실제나 수준별 수업 등 파격적인 학교 운영으로 주목을 받았던 한가람고는 올해 처음으로 국내 대학 상담에만 전념할 전문 진학 상담교사를 11명 확충했다. 이옥식 교장은 “내년에 입학할 신입생들을 1개 반 씩 전담해 3년간 꾸준히 관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역할은 학생들의 적성을 일찍 파악해 진로에 맞는 학습계획과 비교과 항목 준비를 도와주는 것이다. 이 교장은 “한번 관리를 시작하면 졸업 때까지 담당교사를 바꾸지 않아 장기적인 학생 관리를 할 수 있다”며 “리더십 캠프에 참가한 선배 학생 2명당 후배를 12명씩 맺어주는 학생 멘토링 프로그램도 효과를 볼 것”이라고 기대했다.

[사진설명]한영외고 칼리지 카운슬러 김명수 교사가 학생과 진학상담을 하고 있다. 학생의 적성과 진로계획을 들어본 후 맞춤형 대학정보를 제공한다.

< 김지혁 기자 mytfact@joongang.co.kr / 사진=김경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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