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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업] 애인과 한 침대에 눕다 ? 모텔 아닌 미술 전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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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여기 전시장 맞아? 그림은 없고 침대만 놓여 있다. 깔끔하고 보들보들해 보이는 흰색 레이스가 달린 침대다. 한 번 누워봤으면 하는 욕망마저 인다. 어쩔까 주위를 둘러보다 털썩 걸터앉는다. 웬걸, 옆방 작품 구경을 간 여자 친구가 곁에 눕는다. 이럴 수가.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한 그와 한 침대에 들다니….

 서울 서린동 아트센터 나비에서 열리고 있는 ‘보더리스 리얼리티(Borderless Reality)’에 출품된 폴 셔먼의 ‘텔레마틱 드리밍’(사진)이다. 칸막이를 사이에 둔 양쪽 공간의 침대에 누운 사람들의 이미지가 실시간으로 서로의 침대 위에 투사되며 흡사 함께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각자의 시선에 따라 화면에서 둘은 포개 눕기도 하고 바라보기도 한다. 손이 아닌 눈으로 만지는 셈이다.

 ‘보더리스 리얼리티’는 제목 그대로 물리적인 현실과 가상적인 층위가 겹쳐지는 지점에서 이뤄지는 경계 없는 세계를 탐험한다. ‘국제혼합증강현실심포지엄(ISMAR) 2010’의 아트 갤러리 공모작 중에서 선정한 세 작품 등 모두 7점이 나왔다.

 한국작가 문준용의 ‘증강 그림자’는 참여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섬세한 그림자 놀이다. 놀이판 위의 상자를 옮겨가며 빛과 물체의 관계를 조정하면 마치 관객이 창조주가 된 듯 환상적 무대가 펼쳐진다. 줄리오 루시오 마틴의 ‘수태’에는 2000여 마리의 정자(精子)가 등장해 관객과 게임을 벌인다. 화면의 정자는 천정에 달린 카메라 눈을 통해 사람들을 발견하고 몰려다니면서 관객에게 침투한다. 정자의 춤이자 수태인 셈이다. 미술은 이렇게 첨단 디지털 기술 덕에 상상력의 저 너머, 경계 없는 영역을 헤엄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2일까지. 02-2121-1031.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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