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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손 후진타오 잘 모셔라” 포르투갈도 융숭한 대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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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프랑스를 공식 방문 중인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에서 둘째)과 부인 류융칭 여사(왼쪽에서 둘째)가 6일(현지시간) 프랑스 니스 외곽의 전자부품 공장을 찾아 현장 기술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후 주석은 프랑스에서 200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약속했다. [카로스 로이터=연합뉴스]

후진타오(胡錦濤·68) 중국 국가주석이 6일(현지시간)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의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방문했다. 1박2일의 국빈방문 첫 일정이었다. 그는 수도원 안에 있는 포르투갈의 시성(詩聖) 루이스 드 카몽이스(1524∼1580)의 관 앞에 꽃을 바쳤다. 이 수도원은 외빈들이 즐겨 찾는 리스본의 명소지만 중국인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곳에 묻힌 카몽이스와 중국의 역사적 인연 때문이다. 포르투갈은 1557년부터 마카오를 점유해오다 1999년 중국에 돌려줬다. 카몽이스는 그의 대표작인 서사시 ‘우스 루지아다스’를 통해 마카오를 포함한 ‘대항해 시대’의 식민지 개척을 찬양했다. 그는 만년에 서구 열강의 중국 침략 시발점으로 통하는 마카오에 거주하기도 했다.

 국영기업 대표 등 50여 명의 대규모 방문단을 대동한 후 주석은 이날 아니발 카바쿠 시우바 포르투갈 대통령과 회담을 했다. 이어 7일에는 주제 소크라테스 총리와 별도로 회동했다. 현지 언론의 최대 관심사는 중국의 투자 규모였다. 후 주석 방문 직전 푸잉(傅瑩)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포르투갈 국채 매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해 경제난을 겪고 있는 이 나라에 희망을 던져줬다. 중국의 대(對)포르투갈 투자 규모 및 국채 매입 여부는 7일 오후의 양국 경제인 실무회담 뒤 발표될 예정이다.

 포르투갈의 중국에 대한 기대는 후 주석의 프랑스 방문 때 한껏 부풀어 올랐다. 그는 포르투갈 방문 직전 3일간 프랑스에 머물면서 항공기·우라늄 구매 등 200억 달러(약 22조원) 이상의 투자를 약속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남부 해안도시 니스에서 2차 만찬까지 하며 후 주석을 극진히 대접했다.

 중국의 유럽 투자는 이뿐이 아니다. 중국은 지난 7월 재정난에 빠진 스페인의 국채 4억 유로(약 6200억원)어치를 매입했다. 그 덕에 스페인은 외화 조달에 숨통이 트였다. 스페인은 17세기 초에 대만을 점령했고, 프랑스는 1860년부터 80여 년 동안 중국 상하이(上海) 일부 지역을 조차한 나라다.

 서구 열강으로부터 침략을 당하기만 했던 중국이 이제는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유럽국가들에 선심 쓰듯 돈을 꿔주는 시대가 펼쳐진 것이다.

 유럽의 중국에 대한 구애(求愛)는 9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의 방문으로 이어진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위해 서울을 방문하기 앞서 중국에 들르는 것이다. 그는 네 명의 장관을 포함한 50여 명의 방문단을 대동한다. 영국의 선데이 텔레그래프는 1793년 영국의 외교관 조지 매카트니의 청나라 방문 이후 최대의 중국 사절단이라고 보도했다. 매카트니는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말을 남긴 인물이다. 중국의 건륭제는 당시 매카트니의 문호 개방 요구를 거부했고, 이는 이후 영국의 중국 공략 명분이 됐다.

 후 주석의 프랑스·포르투갈 순방 중에는 지난달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중국의 반체제인사 류샤오보(劉曉波) 석방 문제 등 인권 논란은 불거지지 않았다. 양국 정상이 세계시장의 ‘큰손’ 중국을 불편하게 하는 발언을 자제했기 때문이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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