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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웃사이더였다, 그러나 이젠 선택받은 주류”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김두관(51ㆍ사진) 경남도지사와의 인터뷰 날짜는 한 달 전쯤 잡혔다. 30분 단위로 일정이 빡빡한 데다 해외출장도 줄을 이어 1시간 이상 짬을 내기 어려웠다. 김 지사는 6·2 지방선거의 이변이었다. 한나라당 텃밭에서 야권 성향의 무소속인 그가 당선되자 정치권은 출렁댔다. 지사 당선과 동시에 그에겐 2012년 범야권의 잠재적 대선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녔다. 김 지사를 직접 만나보고 싶은 이유였다. 거기에 4대 강 사업 논란이 커지면서 굵직한 현안 하나가 더해졌다. 물어볼 게 많았다.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던가. 3일 인터뷰는 옛 추억과 인연을 돌이켜보는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시작됐다.

“도지사 되니 아주 좋아 죽겠습니다”
-도정을 맡으니 소감이 어떤가.
“2002·2006년에 이어 세 번째 도전 끝에 됐는데 아주 좋아 죽겠습니다(웃음). 워낙 하고 싶어했던 일이기 때문에 많이 힘들지만 잘 극복하려 하고 있다. 나름 행정경험도 있고 해서 빠르게 민선 5기 지사로 안착할 것 같았는데 넉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안착됐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여전히 어렵다. ”

-짧은 기간이지만 아이디어도 많이 내며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평인데.
“민관협치 거버넌스 개념으로 민주도정협의회를 출범시키고 주민참여예산제를 도입했다. 예산의 선택과 집중을 위한 행정다이어트제도 반응이 괜찮다. 작지만 괜찮은 출발인 듯싶다. 한국토지주택공사 진주 이전, 동남권 신국제공항 밀양 유치, 남강댐 물 부산 공급 문제 등 현안도 슬기롭게 풀어가겠다.”

-도 예산과 권한을 시ㆍ군에 전폭 이양하기로 했는데.
“행정자치부 장관 때 중앙정부의 많은 권한을 지방정부(김 지사는 지방자치단체 대신 지방정부라는 표현을 썼다)로 이양하려 했다. 그런데 차관회의를 하면 절대 권한을 내놓지 않으려 했다. 시ㆍ도는 실력이 없어 못한다는 거다. 7년이 지나 이곳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막상 주면 고시 출신도 있고 잘한다. 경제규모가 큰 나라 중 우리처럼 중앙집권도가 강한 곳이 없다. 많은 권한을 지방정부로 넘겨주고 중앙정부는 국가의 큰 전략을 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장관 때 꿈을 여기서 실현하려는 건가.
“우스운 고백 하나 하면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하고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너무 세게 하는 거다. 내가 주무장관인데, 나도 자치분권이 트레이드 마크인데 야, 이거 여기서 다 끝나버리면 나는 완전히 컨셉트를 바꿔야겠다 싶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여전히 너무나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제 임기 중에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저도 조금밖에 못할 거다. 역사는 한 꺼풀에 바뀌지 않는 것처럼.”

“아직 안착 안 됐다는 느낌, 여전히 어려워”
-왜 도지사가 그토록 하고 싶었나.
“어릴 때부터 세상이 좀 공평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정치할 생각은 안 했다. 백기완 선생처럼 민중운동가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조금씩 생각이 바뀌더라. 애국지사가 되면 우리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제도권에 뛰어들어 사회를 직접 바꿔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었다.”

-국회의원도 세 번 도전했지만 다 실패했다.
“나는 참모형이 아니라 야전사령관형이다. 체질이 군수나 도지사 하는 게 맞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 오라는데도 안 간 거고. 국회의원에 도전한 것도 정치하려면 여의도 멤버십에 들어가야 하는데 국회의원이나 당 최고위원이 돼야 가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이 해놓은 일에 옳으니 그르니 따지는 건 체질에 안 맞는다. 내가 그냥 기획하고 열정을 쏟아부어 작은 거라도 만들어가는 걸 더 좋아한다. ”

-한나라당이 절대다수인 도의회와의 갈등을 잘 풀어갈지 우려도 많다.
“도의회의 반대가 많은 게 도민들에겐 오히려 괜찮을 수 있다. 의원님들이 도집행부를 비판하고 야박하게 얘기하는 게 전혀 섭섭하지 않다. 그게 도의원들 본연의 역할이지 않나. 언론도 도정을 비판 감시하는 게 기본임무다. 언론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정치인은 없다.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언론과 의회의 비판이 오히려 우리를 단련시키는 효과도 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한 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얼마 전 ‘큰 지진이 나면 빌딩 가진 사람이 걱정해야지 왜 토큰 가진 사람이 걱정하노’라고 얘기했다가 선배에게 크게 혼났다. 나 자신을 토큰 가진 자에 빗대어 한 얘긴데 ‘너는 정치적으로 이미 빌딩을 여러 채 갖고 있는 사람인데 그런 소릴 하면 어떡하냐’며 정색하시더라. 곰곰이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난 지금껏 스스로를 아웃사이더, 비주류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어느새 도민들로부터 당당히 선택받아 도정을 책임진 주류가 돼 있었다. 나 자신을 소수파로 규정하면 도정을 보는 눈도 좁아지고 도민들에게도 도움이 안 되겠다 싶었다. 스스로 시야를 넓혀보겠다, 좀 더 유연해지겠다 다짐하고 있다.”

“2년 내 하천 복원, 세계적으로 전례 없어”
4대 강으로 화제를 돌렸다. 공격적인 질문에 그는 차근차근 상황을 설명해 갔다.
-왜 4대 강에 반대하나.
“ 간략히 말하면 옳지 않기 때문이다. 4대 강 사업이 환경보전ㆍ수질개선ㆍ홍수예방 효과가 있다는 정부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환경 파괴 사업이고, 심하게 말하면 재앙을 가져올 거라고 보는 거다.”

-한강과 울산 태화강 복원사업도 강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결과적으론 수질도 좋아지고 물고기도 늘었다. 반대논리는 기우였다.
“수많은 교수와 전문가들이 정반대의 견해를 내놓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정말 정답을 주면 좋겠다. 그런 상황에서 저는 보나 과도한 준설이 오히려 낙동강을 죽인다고 보는 거다. 더욱이 저는 지방선거일을 4대 강 심판 국민투표의 날로 규정했고 도민들께서 53.5% 지지해 당선됐다. 보수적이란 평을 받는 천주교 주교회의도 만장일치로 반대쪽 논리에 동의하지 않았나. 세계적으로도 20~30년 걸려 하천을 정비ㆍ복원하지 우리처럼 2년 안에 토목적으로 밀어붙인 전례가 없다.”

-4대 강 사업 자체를 반대하는 건가. 아니면 조정도 가능하다는 입장인가.
“4대 강 전체를 안 했으면 좋은데 이미 많이 진행돼 버렸다. 함안보와 합천보도 이미 공정이 50% 이상 진행돼 반대만 할 수는 없게 됐다. 그래서 공식적으론 반대를 하지만 국토해양부와 비공식적으로 물밑대화도 여러 차례 하며 대안을 냈다. 보의 관리수위를 낮추고 준설 깊이도 조정하자고. 그런데 정종환 장관께서는 협의는 하겠지만 협의기구는 띄울 수 없다고 하더라.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도 다녀가고 이재오 특임장관도 만났는데 원안에서 조금도 물러서기 힘든 것 같더라.”

-국책사업을 지방정부가 무턱대고 가로막기만 해서야 되느냐는 비판도 많다.
“경남이 사보타주하니까 사업권을 회수하겠다는 건데 우린 사보타주한 적 없다. 발주를 보류한 47공구도 본류와 관계없는 지역이 다. 정부가 압박을 가하기 위해 상황을 과도하게 해석한 측면이 크다. 또 국책사업이 중요한 건 알겠지만 성역은 아니지 않나. 주민이 민원을 제기하면 얘기를 듣고 수정 보완하는 게 정부의 기본책무 아닌가. 우리가 전면 반대하는 게 아니잖나. 낙동강 살리기라는 원칙엔 동의하니까 대안을 내고 협의하자는 거 아니냐. 그런데 경남의 요구는 아예 안 받겠다는 거다.”

노 전 대통령에게 200만원 받기도
-‘리틀 노무현’이란 별명은 맘에 드나.
“아유, 과분한데요. 지역주의에 도전한 점은 닮았는데 대통령께서는 좀 더 치밀하고 정교한 면이 있었다. 저는 그러진 못하고 늘 넉넉하고 무딘 스타일이다.”

-에피소드도 많을 텐데.
“대통령에게 평생 딱 한번 돈을 받아봤다. 2004년 베이징 연수 떠나기 전 차라도 한잔 하자고 해서 청와대로 갔더니 헤어질 때 봉투를 하나 건네더라. 뭔가 싶어 청와대 앞 커피숍에서 뜯어보니 1만원짜리로 200만원이 들어 있었다. 옛날로 치면 하사금인데 가보로 보관할까 하다가 잘 다녀오라고 주신 거다 싶어 환전해서 썼다(웃음).”

-지금의 민주당은 어떻게 보나.
“언급하기가 좀 부담되는데…. 민주당이 수권정당ㆍ대안정당으로서의 한계는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민주당 단독으로 집권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민주당을 중심에 놓지 않고 정권 창출이 가능하겠나. 야권연대 없인 한나라당과 게임 자체가 안 된다는 대다수 국민의 뜻을 잘 새겨야 할 거다.”

-여야 일각에선 2012년 대선 후보 중 한 명으로 김 지사를 꼽고 있다.
“두렵다. 어려울 때 도정을 맡았고, 내 나름대로 결벽증도 있다. 중간에 그만두고 나가는 건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다. 2000년 총선 당시 새천년민주당에서 ‘시골에만 처박혀 있지 말고 여의도로 오라’며 출마를 강하게 권유했을 때도 ‘군민과의 약속을 어길 수 없다 ’며 사양했다. 제가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아니고 오직 일로 승부하는 사람이다. 나라를 경영하는 것은 사람 욕심으로 되는 게 아니다. 시대와 역사가 요구해야 하고 준비된 자여야 한다. 나는 아직 도정도 제대로 못하고 있지 않나.”

-도저히 안 되겠다, 김두관밖에 없으니 나오라고 해도 안 나올 건가.
“그런 상황이 올 리도 없고, 안 오길 바란다. 오지 않을 거다. 그런 상황이 오는 건 옳지 않다. 길게 보고 가야지 싶다. 손학규 대표와 유시민 전 장관도 있고, 진보진영에도 노회찬 전 의원과 이정희 대표가 있고. 숨어 있는 사람 중에 박원순씨 같은 분도 있지 않나. 그런 분들 중에서 된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대권은 한 번도 고민 안 해봤다. 제가 일 욕심은 많은데 머리는 별로 안 좋은 사람이다.”

-이광재ㆍ안희정 지사와의 관계는.
“중앙SUNDAY에 이 지사 사진 참~ 잘 나왔데요(본지 10월 3일자 3면). 저도 잘 찍어주실 거죠(웃음). 한 사람을 통해 인연이 맺어져 동지가 됐다. 둘은 로열 패밀리에 노무현 주식회사의 대주주들이다. 대표이사인 노 전 대통령이 60%쯤 갖고 있다면 두 지사가 20%씩 갖고 있달까. 그럼 김두관은 뭐냐. 대표이사가 2%쯤 떼어준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면 유시민 전 장관이 섭섭해할까. 신라시대 골품제로 치면 두 지사는 성골이고, 나는 진골쯤 되는 걸로 알고들 있는데 사실은 6두품이다. 그래도 진골보다 더 사랑받은 6두품이었다.”

-본인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친한 친구이자 동갑내기인 유 전 장관을 보면 굉장히 명석하고, 우리는 따라가려야 따라갈 수도 없고. 많이 배운다. 또 그가 못 갖고 있는 부분을 제가 좀 갖고 있다고 스스로 위로도 하고 그런 맛으로 산다, 허허.”

-꿈이 뭔가.
“좋은 정치가가 되는 게 꿈이다. 시골 이장 출신이 도지사 정도 됐으니 꿈을 많이 실현한 셈이다. ‘야권 출신 도지사에 맡겨도 경남이 이렇게 변하는구나’라는 평가를 꼭 받고 싶다. 여기에 헌신하고 싶다.”

이날 인터뷰는 경남도청 도지사실에서 1시간30분 동안 진행됐다. 2시간여 뒤 서울 올라오는 길에 김 지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10분만 더 통화하자고 했는데 전화를 끊으니 27분36초가 찍혔다. 김 지사도 “이렇게 오랜 시간 인터뷰하긴 처음”이라고 했다. 속 깊은 얘기도 많이 나눴다. 앞으로 경남에서, 그리고 또 다른 무대에서 그의 꿈을 어떻게 펼쳐나갈지 차분히 지켜볼 참이다.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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