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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이 끌고 내수가 밀고 … 8년 뒤면 미국과 맞먹을 전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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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호 24면

‘무리 짓기’는 인간의 본성이다. 세 사람만 있어도 둘이 무리를 지어 편을 가른다. 국가 간 무리 짓기는 보통 지역이나 경제력상의 차이를 통해 이뤄진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유럽연합(EU), 걸프협력회의(GCC)나 서방 선진 7개국(G7) 등이 그렇다.

세계 경제 성장의 중심축 브릭스를 분석한다

지금은 당연한 듯 보이지만 중국·인도·브라질·러시아 등 4개국을 가리키는 브릭스(BRICs)는 그런 의미에서 이상한 조합이다. 인접해 있는 국가도 아니고 생산 기반이 비슷하지도 않다. 이 조합은 2001년 당시 이코노미스트였던 짐 오닐 골드먼삭스자산운용 회장이 고안했다. 최근 방한한 그는 “9·11 테러 이후 미국화(Americanization)의 관점이 아니라 건전한 의미의 세계화(Globalization)의 관점에서 세계 경제를 이끌 개념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오닐 회장조차 “브릭스 정상회의가 열릴 정도로 이 개념이 그렇게 성공적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한 명의 이코노미스트가 제안한 조합이 지금은 세계 경제와 투자를 놓고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화두가 됐다. 2007년 국내 시장에도 브릭스 열풍이 불면서 하루에도 수천억원의 돈이 브릭스 펀드로 몰렸다. 덕분에 한 외국계 운용사는 운용자산이 1년 새 10배 가까이 늘기도 했다. 이후 시장 급락으로 브릭스는 국내 투자자들에게는 아픈 이름이 됐다. 그러나 브릭스 열풍 3년이 지난 지금에도 브릭스는 여전히 가장 유효한 투자 대상이다. 브릭스 시장의 현재와 미래, 포스트(post) 브릭스에 대해 알아봤다.

위기 후 더 빛나는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제 실력은 위기 이후에야 제대로 드러나는 법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 성적은 브릭스가 월등하다. 지난해 미국과 유럽·일본 등 선진국 경제가 뒷걸음질 칠 때 브릭스 국가의 경제는 5.3% 성장했다. 올해 선진국의 경제성장률이 2.7%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브릭스 경제는 8.7%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골드먼삭스는 올해와 내년 중국 경제가 두 자릿수 성장을 할 것으로 예상했다. 오닐 회장은 “지난 10년 동안 중국의 부상이 놀라웠다면 이젠 안전벨트를 매야 할 것”이라며 “앞으로 10년 동안 중국의 국민총생산(GDP)은 7조2500억 달러가 늘어 전 세계 GDP 증가에 가장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골드먼삭스의 전망에 따르면 2018년에는 중국에 인도·브라질·러시아 등 3개국을 합친 브릭스의 GDP가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 된다.

브릭스의 성장이 선진국에 대한 수출에 의존하기 때문에 선진국 경제가 온전히 회복하지 않고서는 이런 예상치의 달성이 어려울 것이란 주장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브릭스 경제 구조는 점차 선진국 의존형에서 벗어나고 있다. 브릭스 인구는 총 28억 명에 달한다. 경제 성장으로 이들 인구가 구매력까지 갖췄다. 브릭스의 내수 규모는 2008년과 2009년 각각 8.4%, 7.1% 늘어났으며 올해와 내년에는 9% 넘는 성장을 할 것으로 보인다. 선진국 소비가 2008~2009년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올해와 내년 각각 2.7%, 1.8% 성장에 그치는 것과 대조된다. 게다가 전 세계 성장을 견인한다는 미국의 소비 성향은 앞으로 꺾일 것으로 보인다. 오닐 회장은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미국의 GDP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달했지만 앞으로 몇 년 안에 66~67%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의 소비가 2007년에 비해 최근 200억 달러 이상 줄었지만 중국은 같은 기간 800억 달러 넘게 늘어났다.

그 결과 2050년이 되면 세계 경제는 브릭스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골드먼삭스 전망에 따르면 중국의 GDP는 2050년 70조 달러를 웃돌 것으로 보인다. 인도·브라질·러시아를 합친 GDP는 미국을 10조 달러 이상 앞설 전망이다. 전 세계 경제 활동의 절반이 브릭스에서 나온다는 의미다.

인플레·핫머니는 위험
경제 성장 측면에서 브릭스는 장밋빛 일색이지만 투자 측면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고성장이 투자의 고수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정도로 중국은 고성장을 하고 있지만 증시는 2007년 가을 고점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3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미래에셋 이머징마켓 전문가포럼’에 참석한 국내외 전문가들은 브릭스 투자의 가장 큰 위협 요소로 높은 변동성을 꼽았다. 특히 러시아가 그렇다. 호세 모랄레스 미래에셋 러시아 주식 운용 최고책임자(CIO)는 “러시아 증시는 유가 및 원자재 가격을 비롯해 전 세계 증시 상황에 민감하다”며 “지난 15년간 러시아 증시 성과를 보면 12년은 전 세계 시장 중 상위 5위 아니면 하위 5위에 들 정도로 변동성이 심했다”고 말했다. 러시아 시장은 게다가 에너지나 원자재 등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 에너지 관련 주식 3개가 러시아 거래소 시가총액의 절반을 차지한다. 유가 및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인한 충격을 러시아 증시가 그대로 받게 된다는 의미다.

인도는 인플레이션이 걱정이다. 전 세계 경제기관의 올해 인플레이션 평균 예상치가 8.4%에 이른다. 중국(3%)·브라질(5.2%)은 물론이고 러시아(7.4%)보다 높다. 이상기후에 따른 가뭄 등으로 작황이 안 좋아 일어난 일이라지만 시장 상승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여기에 인도 시장이 이미 많이 올라 싸지 않다는 것도 불안하다. 인도 증시는 최근 3개월 사이 15% 가까이 오른 것을 포함해 1년 동안 30% 상승했다. 주식의 가격 수준을 보여 주는 주가수익비율(PER)은 24배로 지난 10년간 평균치를 20% 웃돌고 있다.

중국도 경제 구조를 수출 주도에서 내수 주도로 바꾸는 것이 관건이다. 높아진 인건비로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서부 농촌 개발 등을 통해 소비 가능 인구를 늘려야 한다. 바수쑹 중국 국무원 발전연구센터 금융연구소 부소장은 “중국은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이 5000달러가 되면 성장세가 꺾인다는 ‘남미의 함정’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함정을 피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한국처럼 기술 진보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브라질은 ‘핫머니’ 유출입으로 인한 시장 교란을 우려한다. 실질금리 수준이 사상 최대로 올라가면서 외부 자본이 브라질로 몰려들었다. 그 결과 헤알화 가치가 역사적으로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 브라질 정부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외국인투자자들이 브라질 국채에 투자할 때 부과하는 금융거래세율을 2%에서 최근 6%로 올렸다. 장기적으로는 낮은 교육 수준이 성장의 걸림돌이다. 18~24세 인구 중 중등교육 이수자 비율이 20%에 불과하다. 미국(82%)은 물론이고 아르헨티나(67%)·칠레(52%) 등 다른 남미 국가에 비해서도 현저히 떨어진다. GDP 대비 공공 부채 수준은 70%에 육박해 다른 이머징 국가에 비해 높은 편이다.

포스트 브릭스, 브리시·넥스트 11·시베츠
위험 요소가 있기는 하지만 브릭스가 전 세계 시장에서 가장 유망한 투자 지역이라는 데는 대부분의 전문가가 동의한다. 오닐 회장은 “낙관적으로 보나 비관적으로 보나 지금은 주식에 투자할 때”라며 “그 가운데서도 브릭스를 주목하라”고 조언했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앞으로 가장 유망한 자산은 주식”이라며 “해외와 국내에 7대 3 비중으로 투자하고, 해외 시장에선 브릭스가 가장 유망해 보인다”고 말했다.

투자의 최전선에 있는 투자은행들은 이미 포스트 브릭스, 곧 브릭스 그 이후의 투자 지역을 찾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지난해 브릭스에 더해 최근 경제가 급성장한 인도네시아를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명 ‘브리시(BRICI)’다. 인도네시아의 정치적 안정과 2억5000만 명(세계 4위)에 달하는 인구를 기반으로 하는 내수 증가가 경제 성장을 이끌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인도네시아 증시는 올 들어서 40% 급등했다.

브릭스로 재미를 보던 골드먼삭스가 2005년 말부터 밀기 시작한 지역은 ‘넥스트 11’이다. 브릭스를 계승할 차세대 신흥국을 일컫는다. 한국·방글라데시·이집트·인도네시아·이란·멕시코·나이지리아·파키스탄·필리핀·터키·베트남 등이다. 오닐 회장은 “2030년이 되면 브릭스와 넥스트 11 등 이머징 시장이 전 세계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55%를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BNP파리바는 넥스트 11 국가 중 유동성이 높은 국가 8개국을 선정해 ‘이지 ETF(상장지수펀드)’를 내놓을 계획이다.

경제학자들은 ‘시베츠(CIVETS, 콜롬비아·인도네시아·베트남·이집트·터키·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성장 잠재력에 주목하고 있다. 경제연구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최근 보고서에서 20년 후 시베츠의 평균 경제성장률을 4.5%로 전망했다. 브릭스의 성장률(4.9%)에 맞먹는 수치다.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FT)는 ‘7퍼센트 클럽’에 주목할 것을 제안했다. 7퍼센트 클럽은 영국계 금융그룹인 스탠다드차타드가 만든 신조어다. 경제성장률이 연 7% 이상을 기록한 나라를 뜻한다. 연 7% 성장하면 10년 안에 해당국 경제가 두 배로 커진다는 점에 착안했다. 2008년 기준으로 중국·베트남·에티오피아·우간다·모잠비크 등이 포함된다. FT는 “매년 경제 성적표를 근거로 클럽 멤버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국가명이 이름에 반영돼 회원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한 브릭스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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