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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남편과 프랑스 태생 자녀, 가족 자체가 G3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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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호 12면

한국은 이제 세계 와인시장에서도 명실상부한 주요 20개국(G20)이다. 그것을 실감나게 하듯 서울에서 열릴 G20 정상회의(11∼12일)와 ‘G20 비즈니스 서밋(10∼11일)’에서 한국인이 만든 와인이 잇따라 만찬주로 선보인다.

‘G20 비즈니스 서밋’ 만찬 와인 루뒤몽 만든 박재화 대표

먼저 정상들을 위한 만찬주로 나오는 레드 와인 ‘온다도로’는 미국산 한국와인이다. 제분업체인 동아원의 이희상 회장이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에 소유하고 있는 와이너리 ‘다나 에스테이트’에서 생산한다. 온다도로는 이탈리아어로 ‘황금 물결’을 뜻한다. 국내 소비자가격은 45만원. 각국 재무장관들의 만찬주로도 동아원이 만든 레드 와인 ‘바소’가 나온다. 이탈리아어로 ‘항아리’를 뜻하는 브랜드다.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릴 ‘G20 비즈니스 서밋’에선 프랑스 ‘부르고뉴산 한국 와인’ 루뒤몽 크레망이 제공된다. 와인 브랜드 ‘루뒤몽(Lou Dumont)’의 대표 박재화(43)씨가 만든 것이다. 이 와인은 이틀간 리셉션 및 만찬장에서 11개국 정상을 비롯해 국내외 기업인 120여 명이 맛본다. 국내 소비자 가격은 6만7000원.

때마침 한국을 찾은 박재화 대표를 5일 중앙일보사 편집국에서 만났다. 박 대표는 일본인 남편 나카다 고지(37), 프랑스에서 태어난 딸 레아(8), 아들 태호(6)와 함께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G3(한국·일본·프랑스) 가족(작은 사진) 인터뷰를 한 셈이 됐다.

-축하한다. 왜 루뒤몽 크레망이 만찬주로 선정됐다고 생각하나.
“나도 이틀 전에야 알았다. 일단 크레망은 품질이 어느 정도 받쳐준다. 그리고 레이블을 보면 두 사람이 지구를 손으로 떠받치고 있다. 일본 남성이 한국 여성과 결혼했듯 이번 회의가 인류 화합이라든지, 서로 도우며 살아야 된다는 그런 걸 기치로 삼기 때문에 채택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루뒤몽 크레망은 어떤 와인인가.
“샴페인이다. 그런데 샴페인을 만드는 샹파뉴 지방에서 다른 스파클링 와인에 샴페인이라는 말을 못 쓰게 하기 때문에 우리는 크레망 드 부르고뉴라고 쓴다. 샤르도네 품종 하나로 만든다. 순수하면서도 차별화된 맛을 갖고 있다. 고급 포도주인 AOC급 와인이다.”

-루뒤몽은 무슨 뜻인가.
“루(Lou)는 우리 부부의 대녀(代女:가톨릭에서 성세 성사나 견진 성사를 받을 때 종교상 후견을 약속받은 여자) 이름이다. 프랑스에 처음 정착할 때 많이 도와준 사람의 딸이다. 루의 부모가 나중에 자기들이 숨지거나 했을 때 딸을 도와줄 수 있겠느냐 해서 우리가 대모가 될 것을 약속했다. 루는 섬세하고 우아하다. 우리 와인에서 그런 느낌이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그의 이름을 붙였다. 뒤몽(Dumont)은 흔한 성씨라고 보면 되는데, 가장 프랑스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이름을 붙였다. 산(山)이라는 의미도 있다. 늘 고향을 생각한다는 의미다. 내 고향 거제도는 산이 깊다. 남편의 고향에도 산이 많다. 그러니까 루뒤몽은 실존 인물이 아니다.”

-부르고뉴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한국인이 또 있나.
“네고시앙(포도밭이나 와이너리에서 포도나 포도주를 사들여 자신의 양조장에서 와인을 만들거나 블렌딩·숙성·병입해 자신의 이름으로 유통시키는 기업)을 만들어서 와인을 생산하는 사람으론 내가 유일하다. 일본 여자 3명이 생산자와 결혼한 경우가 있기는 하다.”

-한 해 대략 몇 병 정도 생산하나.
“크레망과 보졸레 누보를 주로 생산하는데 7만 병쯤 된다.”

-연 매출은.
“우리가 양조해서 판매하는 것은 100만 유로(약 15억7000만원) 정도다.”
매출 규모를 묻자 박 대표는 남편에게 정확한 금액을 확인하려 했다. 두 사람 사이에 잠깐 동안 프랑스어가 오갔다. 경상도 여자와 일본 사람이 프랑스어로 대화하는 것을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루뒤몽 와인에는 천지인이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던데.
“루뒤몽 크레망에는 라벨 아랫부분에 아주 작은 글씨로 써놓았다.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에는 크게 썼다. 천지인이라는 말이 부르고뉴에서는 테루아(Terroir)라는 의미다. 포도나무가 둘러싸여 있는 자연환경을 말한다. 기후·위치·고도·방향·토질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것이 천지다. 그리고 인은 어떤 사람이 포도를 재배하고 만드느냐인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하다 천지인을 쓰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우리가 ‘신의 물방울’을 보고 베낀 것 아니냐고 묻던데 우리가 먼저 한 거다.”

-프랑스에서는 가격이 얼마쯤 하나.
“수출만 하기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살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 집에 와서 마셔본 사람들은 아주 좋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한번은 집들이를 했는데, 부르고뉴 와인의 거장 앙리 자이에도 왔다. 자이에도 돌아 가면서 남편한테 ‘크레망이 참 맛있었어’라고 말했다.”

-생산하고 있는 와인이 일본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에도 소개됐다던데.
“우리가 만드는 화이트 와인 ‘루뒤몽 뫼르쏘 2007’ 얘기다. 100% 샤르도네로 만들었고 맑은 레몬색이다. 오크 향과 파인애플 및 열대과일 향이 풍부하다. 알코올과 산이 조화를 이뤄 엘레강스하면서 풍부한 느낌을 준다.”

-올해 당신이 만든 와인의 품질은 어떤가.
“수분이 될 때 날씨가 안 좋아 껍질이 두꺼운 포도알이 맺혔다. 한꺼번에 수분이 되면 알맹이가 큰 포도가 생산된다. 하지만 수분이 방해를 받으면 맺히다 말기 때문에 알맹이가 작고 껍질이 두꺼워진다. 그런데 탄닌과 색소는 다 껍질에 있기 때문에 장점도 있었다. 수확해보니 색깔도 진하고 농축된 즙이 나왔다. 품질이 괜찮았던 2006년 수준은 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재화씨는 올 5월 『어느 날 부르고뉴 와인 한 잔이…』라는 와인 에세이집을 한국어로 출간했다. 자신의 삶과 사랑, 와인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부르고뉴에서의 포도 재배 및 와인 생산과정 등을 소개해 와인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쉽고 재미있게 읽도록 만든 책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번에 한국에는 무슨 일로 왔나.
“1년에 두 번 정도 거래업체(수석무역)와 프로모션도 할 겸 방문한다. 근데 정말 좋은 의미로 까마귀 날자 배 떨어졌다.(웃음) G20비즈니스 서밋에 만찬주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이들 때문에도 자주 오려고 한다. 한국말을 잊어먹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레아는 잘 한다. 태호는 가나다라 정도만 안다. 학원에 가기 싫다며 엄마한테 직접 가르쳐 달라고 조른다.(웃음)”

-어떻게 프랑스에서 살게 됐나.
“1996년 미술품 복원 분야를 공부하려고 프랑스에 갔다. 어학공부부터 시작했는데 가자마자 프랑스 와인에 푹 빠졌다. 그래서 전공을 와인으로 바꿨다. 공부가 끝난 뒤 짐을 부치고 귀국하기 직전, 함께 공부한 고지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때 고지는 일본에서 프랑스 네고시앙과 수입업자들을 연결해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공중전화로 국제통화를 했는데 고지가 펄쩍 뛰었다. 그러면서 자기와 함께 프랑스에서 와인을 만들자고 끈질기게 설득하더라. 그때 문득, 이 사람 말에서 진실이 느껴졌다. 그래서 프랑스에 눌러앉았다. 나중에 고지에게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헤어질 것 같아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 고지는 나와 같이 공부할 때 나를 훌륭한 와이너리에 데리고 다니면서 와인의 세계에 눈을 뜨게 해준 사람이다.”

박씨는 인터뷰 말미에 “우리집입니다” 라며 만화 몇 페이지를 보여줬다. 『신의 물방울』에 나오는 만화인 듯했다. 아이들도 만화 속 집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와인이 맺어준 화목한 가정임을 확인시켜 주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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